출근길 역 승강장 매점에서 여러 해 동안 모닝 커피를 사 마셨다. 새 직장에 처음 출근하던 날 아침, 늘씬하게 뻗은 알루미늄 병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통 모양으로 줄지어 서 있는 알루미늄 캔, 그리고 뚱뚱한 알루미늄 병과 플라스틱 용기 제품 사이에 뾰족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던 커피 병. 그중 한 병을 골라서 객차에 올라탄 뒤, 아직 서울 외곽 지역을 달리고 있어 덜 붐비는 열차 자리에 앉아 음미하는 커피 맛은 못다 깬 잠을 몰아낼, 그리고 밤새워 이뤄질지도 모를 그날의 작업을 지지할 마력을 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커피를 마신 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코로나19였다. 승강장에서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면, 마스크를 잠깐 들어 올리고 재빨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마치 화학전 상황에서 방독면을 잠시 벗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오전을 책임질 모닝 커피를 포기할 수야. 마스크 속에서 커피 향이 더 진하게 퍼지는 느낌은 코로나19가 준 선물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병을 감싼 포장재에 찾아왔다. 처음엔 포장재를 벗겨내려면 칼이 필요했다. 페트보다 재활용이 용이하기에 나는 되도록 알루미늄 병 음료를 샀지만, 포장재를 벗겨내기 힘든 것이 단점이었다. 2년 전쯤부터 포장재를 제거하기 쉽도록 구멍을 뚫어 놓아 마음이 편해졌다. 덕분에 오징어 몸통처럼 가로로 쭉쭉 찢어 벗겨내야 했던 포장재를 이제 금방 제거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처음 이 커피를 보았던 바로 그 매점에 찾아왔다. 여러 해 동안 내가 늘 같은 커피를 사 마시는 줄 알고서 가끔 커피를 꺼내 주기도 했던 매점 주인은 사라졌다. 그다음 바뀐 주인도 몇 달을 버티지 못했다. 한동안 입찰 공고가 걸려 있던 매점은 며칠 출장을 다녀온 사이 철거되고 없었다.

이 ‘변화’ 뒤에는 수많은 사실이 있다. 승강장 매점은 관리하기에 큰 수고가 드는 데다, 일에 비해 박봉인 자리다. 코로나19 덕에 수요는 줄고 일손도 구하기 힘들어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몇 년 동안 이어진 사소한 일상이 이처럼 깨어지기 쉬웠다는 것을, 승강장 위에 남아 있는 매점의 흔적을 보며 씁쓸하게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