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한조선·케이조선 등 조선 4사가 자사 인력을 부당한 방법으로 빼냈다며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조선 업체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이 핵심 인력에게 접촉해 통상적인 임금 수준 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직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조선 업체들이 인력 유출 문제를 공정위에 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적법한 공개 채용 절차에 따라 경력직을 채용했다며 이들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현중과 조선 4사 경력직 채용으로 갈등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조선 4사는 30일 “현대중공업 계열 조선 3사가 부당한 방법으로 우리 회사의 기술 인력을 유인·채용해 사업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공정위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정위에 제출한 신고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 측이 각 사 주력 분야의 핵심 인력 다수에게 직접 접촉해 이직을 제안하고 통상적인 보수 이상의 과다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인력에 대해서는 서류 전형을 면제하는 채용 절차상 특혜까지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조선 4사는 “이 같은 인력 유출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공정뿐 아니라 품질 관리에도 차질이 생겼다”며 “이는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사업활동 방해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부당하게 인력을 채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경력직 채용은 통상적인 공개 채용 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서류 전형을 포함해 모든 지원자가 동등한 조건이었다”면서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되면 절차에 따라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다른 업체의 과장급 직원 연봉 차이가 1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아는데, 굳이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까지 인력을 유인할 이유가 있겠느냐”면서 “만약 그런 식으로 했다면 기존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벌써 들고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감 늘어나는데 인력 부족이 갈등 원인

이번 갈등의 배경에는 늘어나는 일감에 비해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 이후 물동량 폭증과 함께 조선 3사는 지난해 수주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고 올해도 이미 90% 가까이 채운 상태다. 그러나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직원 수는 2014년 5만5000여 명에서 올 상반기 3만7000여 명으로 급감했다. 조선업이 장기 불황을 겪는 동안 신규 채용을 줄이고 희망퇴직으로 인력 규모를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손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기술 인력이 현대중공업그룹 쪽으로 대거 이탈하자 위기감이 높아진 조선 4사가 공정위에 신고까지 한 것이다. 조선 4사 측은 “인력 육성을 위한 투자 대신 경쟁사의 숙련된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해 간다면, 공정한 시장 경쟁은 저해될 뿐 아니라 한국의 조선해양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에서만 올해 수백 명이 이직을 시도했고 100여 명이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사안이 실제 공정위에서 사업활동 방해 행위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핵심 기술이 유출된 것도 아닌 데다 직원들이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직한 것을 불공정 행위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자사 직원들이 더 이상 이직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정위에 신고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에 신고를 한 조선 업체 직원들 사이에서도 회사 결정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 직원은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애들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내고 싶어서 이직하는 것도 막겠다는 것이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