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상수지가 68억6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국은행이 5일 밝혔다. 흑자 폭은 1월(30억5000만달러)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커졌다. 반도체 수출을 중심으로 상품수지 흑자 폭이 확대된 영향이다.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서 최근 코스피도 2년 만에 2700 선을 회복하는 등 주식시장에도 훈풍이 부는 분위기다. 하지만 3년 넘게 누적된 고금리·고물가와 가계부채 때문에 내수는 아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의 힘, 수출 5개월 연속 증가
우리나라 경제의 종합 성적표인 경상수지는 지난해 5월 23억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후 10개월 연속 흑자 행진 중이다. 경상수지란 국가 간 상품, 서비스의 수출입과 함께 자본, 노동 등 모든 경제적 거래를 합한 통계다.
2월 경상수지를 항목별로 보면 상품 수출과 수입의 차이인 상품수지가 66억1000만달러 흑자로 지난해 4월부터 11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0% 증가한 521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은 2022년 9월부터 13개월 연속으로 1년 전보다 줄어드는 침체에 빠졌다가 작년 10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세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6년 2개월만의 최대폭인 63% 증가(전년 동월 대비)하면서 상품수지 흑자 폭 확대를 이끌었다. 수입은 12.2% 줄어든 455억5000만달러로 나타났다.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이 19.1% 감소했고, 자본재 수입도 5.3% 줄었다.
한은은 “상품 수출 증가세가 지속됐고, 상품 수입 감소세도 이어지면서 1월에 크게 줄어들었던 무역수지 흑자가 2월에 다시 확대된 영향”이라며 “3월에도 여전히 IT 품목 중심으로 수출 개선 흐름이 이어졌기 때문에 경상수지는 3월에도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달 초 발표된 3월 무역수지 흑자 폭(42억8000만달러)은 2월(42억9000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년 만에 코스피 2700대 회복
연초 부진했던 주식시장도 반등 분위기다. 지난 1월 2400대로 밀렸던 코스피는 3월 말 2700 선을 회복했고, 4월에도 2700대를 유지하고 있다. 코스피가 2700대를 넘어선 것은 약 2년 만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가 주식을 중심으로 90억5000만달러 증가했지만, 반대로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106억5000만달러 늘었다. 내국인이 외국에 투자한 것보다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게 더 많았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회복 덕에 전체 산업 생산과 설비 투자도 호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산업 생산은 한 달 전보다 1.3% 늘었다. 작년 11월(0.3%)부터 4개월 연속 증가세다. 고성능 반도체 수요와, 코로나 때 교체했던 PC를 다시 바꾸려는 수요의 증가 때문으로 해석된다. 2월 설비 투자도 한 달 전보다 10.3% 늘었다. 지난 2014년 11월(12.7%) 이후 9년 3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통계청은 “항공기·선박 수입이 늘어난 것과 더불어, 반도체 제조용 특수기계와 관련한 투자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2월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소비는 전달보다 4.8% 감소했다. 코로나 시기였던 지난 2022년 2월 이후로 가장 감소 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수출 호조세가 당장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모든 국민이 수출 기업에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출 기업 실적이 좋아진다고 해서 곧장 국민들의 지갑이 두툼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장기화하고 있는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꺾여야 국민들이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체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