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비비테

나는 채식주의자가 전혀 아니지만 채식을 지향한다. 소고기와 닭고기는 끊었고, 돼지고기는 아직 끊기가 힘들다. 누군가 처음 만날 때 ‘베지테리언이시죠?’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글 쓰고 고양이도 키우셔서 왠지 채식도 하실 것 같아요”라는 재밌는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면서도, 채식을 ‘지향’하는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드는 질문이 있다. ‘채식과 일반식 사이에 존재하는 드넓은 점이지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다.

최근에 비건 만두를 쇼핑하다가, ‘지구식 식단’이라는 브랜드를 보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쓴 듯 삐뚤빼뚤한 서체의 초록색 글씨는 귀엽고 만만해 보였다. 카피라이터로 광고 일을 처음 시작한 나는 광고를 만들어서 돈을 벌지만 광고를 보지 않으려고 돈을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광고로 번 돈을 광고를 보지 않는 데 쓰는 거다. 이렇게 문장으로 쓰고 보니, 아주 우스운 모순이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아주 설레는 ‘네이밍’을 만났달까. 비건도, 채식주의자도 아닌 나도 두 팔 벌려 받아줄 것 같은 그 이름, ‘지구식’(이 글은 브랜드에서 어떤 원고료도 받지 않음).

어떤 성향이 그 부류의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화, 정치, 국적, 사는 방식, 좋아하는 음식 등 어떤 것이든. 그런데 그 ‘이름’들이 너무 강조되면 그 ‘이름’의 안과 밖에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갈등은 대단한 건 아니다. 채식주의자라는 친구가 회식 자리에서 고기 한 점을 먹었을 때, 그 친구를 잡아먹을 듯이 비난하는 것. 고기를 즐겨 먹는 친구를 희대의 환경 파괴자 취급하는 것. 자잘하지만 누군가의 일상에서는 시끄럽기도 한 갈등들을 말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지구식 식단’이라는 이름은 기존의 분류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이름이라는 점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분류가 아니라, 이 음식이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 자체에 집중했다는 것도 칭찬하고 싶었다.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지구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육가공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이 ‘지구’에 좋지 않다는 것은 몇 개의 다큐멘터리만 봐도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팩트’다. 어떤 그룹들로 소비자들을 구분 짓지 않아도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음식인지 쉽게 전달하고 있어서 나는 결국, 그 만두를 집어 들고 말았다.

카피라이터가 쓴 문구인지, 마케터가 쓴 문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지은 이름일지 순순히 와닿았다. 카피라이터들은 이름을 짓고 아이디어를 낼 때, 참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리 재밌는 이름일지라도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버려야 한다. 그렇게 버린 카드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가 하면, 좀 더 친근하고 만만하게 다가가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한자어는 최대한 쓰지 않고 카피를 쓴다. 또 수많은 카피라이터가 오늘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저잣거리의 언어들을 주워 자신들의 냉장고에 소중히 보관해 두고 있다.

뉴스에서 수많은 단어가 칼을 물고 서로를 향해 던져지는 걸 본다. 카피라이터의 마음으로 말하고 쓰기는 어렵겠지만, ‘가끔은 광고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정도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