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매우 손쉽게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부터 유튜브까지 음악의 유통 채널로 등장하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숫자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음악을 듣다 보면, 끊임없이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멜로디를 내놓는 뮤지션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이 많은 노래를 겹치지 않고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피해 마음에 깊이 남는 선율을 만들어 내는 뮤지션들이야말로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일 것 같다.
남과 비슷한 유사성을 피해야 하는 것은 우리 같은 서체 디자이너들에게도 더 중요해졌다. 폰트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다른 폰트의 글씨를 그대로 가져와 살짝 변형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악의(惡意)를 가진 디자이너라면 표절 유혹에 넘어가기 쉬울 것이다. 최근 우리 업계에선 표절 관련 이슈도 급증했다.
특히 서체 디자인에는 문자 고유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피치 못할 어려운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알파벳 ‘O’는 사각형에 가깝게 변형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O’로 인식한다. 반면 한글 ‘ㅇ’은 조금만 각지게 표현해도 ‘ㅁ’과 구분이 어려워진다. 유독 한글에는 이런 사례가 많아서 그만큼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기 힘들다. 같은 말이라도 어조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의미는 좀 다르지만 한글 서체 디자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명확히 다르게 보이는 두 폰트가 유사하다며 억지를 부리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폰트가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면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디자이너는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글자를 만들었지만 사용자들이 그 의도를 꼭 따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쓰일 것을 상상하며 만들었는데 패스트푸드점 전단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디자이너 본인은 한정된 수요를 예측했는데 광고 업계 전체에서 ‘대박’이 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예측 불허다. 이러니 결과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