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5일 취임 이후 첫 전국 법원장 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특허법원, 행정법원, 가정법원 등의 법원장 34명이 전원 참석했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사법부가 직면한 ‘재판 지연’이라는 최대 난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며 “특히 법원장들이 솔선수범해서 ‘신속한 재판’을 구현하기 위한 사법부의 노력에 앞장서 달라”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오늘 회의에서 법원장들이 지혜와 경륜을 모아달라”고 했고 법원장들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 방안’과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 토론했다.
조 대법원장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재판 지연’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 제도는 지방법원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은 그중 한 명을 해당 법원의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법원장이 되려면 후배 판사들의 평판을 의식해야 하고, 법원장이 된 뒤에는 자신을 뽑아준 판사들 눈치를 보느라 재판 지체가 있어도 “제때 재판하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법원 내부에서 나왔다. 판사로서 실력과 경험이 가장 풍부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을 지방법원장 인사에서 원천 배제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조 대법원장은 ‘법원장 추천제’를 폐지 수준으로 전면 개편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법원별로 법원장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단위로 법원장 후보들을 추천받아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방안 등이다. 일선 판사들보다는 대법원장의 평가가 더 많이 작용하는 구조인 셈이다. 조 대법원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두루두루 인재를 구하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법관을 잘 살펴내겠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 법원장 회의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에 대해 일선 법원 분위기를 가늠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대법원은 보도 자료를 내고 “법원장들이 장기 미제 사건 처리에서 선도적, 중심적 역할을 할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운용 방안에 대해 법원장들이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회의에서는 법원장 추천을 전국 단위로 바꾸는 방안 등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장의 전체적인 기조에 대놓고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는 “‘조희대 체제’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운데 ‘재판 지연 해결’을 전면에 내걸고 출범한 만큼 비교적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하지만 일부 법조인은 “지금 법원은 머리만 ‘조희대’로 바뀐 상태”라며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 일부 법원장은 현행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장점을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법원장 34명은 모두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했다. 한 법조인은 “지방법원장 중 20명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따라 법원장이 됐다. 그 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는 데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선 판사 일부는 전국 법원장 회의를 앞두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편을 반대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리기도 했다. 남인수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추천제가 재판 지연을 초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제도 개편에 부정적인 글을 올렸다. 이들은 ‘김명수 사법 정책’을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거나 김명수 체제에서 주류로 떠올랐던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두 판사의 글에 댓글이 별로 달리지 않는 등 큰 반향은 없다”면서 “다만, 조 대법원장도 일선 판사들과의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