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시설 예약 웹사이트 ‘e하늘 화장예약서비스’는 최근 매일 예약 전쟁이 치열하다. 새벽 0시 새로운 날짜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수도권·광역시 시설부터 몇 분 안에 빠르게 매진된다.

이 같은 ‘화장 예약 전쟁’이 벌어진 건 올해 3년 만에 윤달(3월 22일~4월 19일)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음력 윤달에는 액운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 이 때문에 전에도 윤달에는 묫자리를 옮기는 수요가 높았다. 그런데 최근엔 묫자리를 옮기기보다는 선산에 흩어진 선조들 산소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미 매장한 시신·유골을 새로 화장한 뒤 찾아가기 쉬운 납골당이나 봉안 시설에 새로 모시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윤달이 낀 윤년 개장(改葬) 유골 화장 건수는 2014년 8만15건에서 2017년 9만4651건, 2020년 10만1018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 3~4월 코로나 사망자 급증 때문에 뒤로 밀린 개장 수요까지 있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국이 윤달 기간 개장 유골 화장 예약을 한 달 전부터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개장 유골 화장을 기존 2배 넘게 할 수 있게(하루 평균 448건→1035건) 했는데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 장례지도사는 “온 가족을 동원해도 화장 시설 예약에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개장을 맡은 업체가 예약 대행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소도시에 사는 김모(68)씨는 올해 윤달 기간에 고향 선산 산소를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조상 유골을 화장한 뒤 선산 아래 평지 한곳에 묻기로 했다. 거창한 봉안당을 만드는 대신 잔디를 깔고, 가족들 이름을 새긴 비석 하나만 두기로 했다. 수년 전 결심하고 준비해온 것이다. 그는 “‘묫자리 잘못 옮기면 탈 난다’는 말도 옛말이에요. 시골 선산이 개발돼서 보상금 받고 선조들 산소 없앤 사람들이 평생 벌초하고 산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살아요. 우리 부부는 평생 산소 벌초하고 성묘했지만, 자식들은 그런 고생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장은 최근 이 같은 이장(移葬) 수요 증가를 두고 “선산·묘지 중심 장례 문화가 저물고 새로운 추모 문화를 만드는 분기점이 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평생 제사·벌초를 해온 60대 이상 장·노년층들이 ‘MZ 세대’로 불리는 자녀들 대에선 묘지 중심 추모 문화가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제사·성묘·벌초에 대한 부담을 남기지 않고 죽겠다는 한국식 ‘웰다잉’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성모(84)씨는 선산 대신 충남 논산 납골묘원에 20기를 안치할 수 있는 대형 가족납골묘를 미리 계약하고, 시부모님 등 조상과 함께 그곳에 묻히겠다고 선언했다. “명절마다 선산에 가서 묘소를 관리하는 건 자식들에게 너무 큰 숙제 같다”고 했다. 한 가족납골묘 업체 관계자는 “일년 두 차례 벌초가 일반적인데 업체를 쓰면 봉분 하나당 20만~30만원이 든다”며 “자식들이 돈 쓰는 것도, 매번 신경 쓰는 것도 싫다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윤달

음력에서 1년이 양력 1년보다 약 11일 짧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 2~3년에 한 번씩 끼워 넣는 달이다. 올해는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다. 윤달에는 ‘궂은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