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대(對)러시아 항전이 위기에 봉착하면서 유럽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파병론’과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 국가가 직접 병력을 보내 우크라이나를 돕는 방안을 배제해선 안 되며, 또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도록 공격 범위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및 고위 관계자들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차 대전으로 갈 수 있다’고 위협하며 강력 반발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 장관은 28일 폴란드 매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그 어떤 선택지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파병론에 처음 불을 지피며 썼던 것과 똑같은 표현으로, 폴란드도 파병 의사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폴란드 외무부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므로 미래에 어떤 특정한 상황(파병)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발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도 파병론에 가세했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러시아·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우크라이나에 이은 러시아의 ‘다음 타깃’으로 종종 언급된다. 세 나라 의회 대표는 지난 16일부터 3일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린 안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지원이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황이 극도로 악화할 경우, 러시아군이 우리 국경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라트비아 국방부는 지난 2월 “나토 합의가 있으면 파병할 뜻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파병론은 EU 차원으로도 확산 중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국방장관회의 직후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우크라이나군) 군사훈련을 하는 방안에 관한 토론이 오갔다”고 밝혔다. 전투병이 아닌 훈련 교관으로 범위를 한정했지만, 폴란드 등 인접 국가에서 해오던 훈련 지원을 우크라이나 내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보렐 고위 대표는 직접 파병과 관련해 “회원국 간 다양한 시각이 있어 현재 명확한 EU의 입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은 변하는 법이다”라며 상황에 따라 파병 논의가 급진전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를 이용해 러시아 내 목표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본토 타격 허용론’도 본격 제기되고 있다. 보렐 대표는 이날 “우크라이나가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전쟁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더 이상 이를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나토는 최근까지 러시아와 직접 충돌로 이어지는 확전을 우려, 서방 무기를 이용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영토 공격을 불허(不許)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이 때문에 점령지가 아닌 러시아 본토 공격시 미국·유럽산 장거리 미사일 대신 자국산 무인기를 써왔다.
나토 역시 달라진 입장을 연일 피력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24일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 이어 27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나토 의원총회(NPA)에서도 “서방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영토 공격 제한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NPA에서는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공격 제한을 해제하는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그는 “반대쪽 국경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 못하면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렵다”며 공격 제한 범위 철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나토의 입장 전환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독일 국빈 방문 일정 마지막 날인 28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군사기지를 무력화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은 “우크라이나의 패전 가능성이 대두되고, 이를 이용한 러시아의 종전 압박이 커지자 유럽 전반으로 안보 불안감이 확산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배경을 분석했다.
러시아는 군사적 위협 발언으로 맞섰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파병에는)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유럽, 특히 (발트 3국 등) 작은 국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방이 파병을 계획하면 갈등을 확대, 세계적인 충돌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은 지난 3월에도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적 충돌은 3차 세계대전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러시아 매체 인터뷰에서 “나토가 군사적 ‘황홀경’에 빠져 양측의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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