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폐막한 '제63회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수상자들. 왼쪽부터 3위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루카스 슈테어나트, 1위 수상자 박재홍, 2위 수상자 김도현/연합뉴스

해외 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 피아니스트가 또다시 세계적 콩쿠르 정상에 올랐다. 피아니스트 박재홍(22·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이 3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폐막한 제63회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상금 2만2000유로)을 차지했다. 그는 우승과 함께 작곡가 부조니 작품 연주상, 실내악 연주상, 타타로니 재단상, 기량 발전상 등 4개 부문 특별상도 휩쓸어 대회 5관왕에 올랐다. 피아니스트 김도현(27·클리블랜드 음악원)도 나란히 2위에 올라서 한국 음악계의 겹경사가 됐다.

1949년 창설한 부조니 콩쿠르는 외르크 데무스(1956년)·마르타 아르헤리치(1957년) 같은 명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대회. 우승자를 배출한 대회(32회)만큼이나 ‘1위 없는 2위’를 발표한 대회(31회)가 많아서 우승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까다로운 콩쿠르로 유명하다. 한국 우승자는 피아니스트 문지영(2015년)에 이어서 두 번째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3일 폐막한 부조니 콩쿠르에서 협연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부조니 국제 콩쿠르

박재홍의 부조니 콩쿠르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 지난 2019년 대회에서는 본선 1차에서 탈락했다. 그는 우승 직후 전화 인터뷰에서 “첫 도전에서 떨어진 뒤 2년간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실패가 오히려 든든한 보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출생인 그는 아홉 살 때 비교적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서 한예종에 입학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59)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그의 스승. 손열음·김선욱·문지영 등으로 이어지는 ‘김대진 사단’의 막내로 불린다. 김 총장은 “박재홍은 피아노 독주뿐 아니라 실내악 연주와 반주까지 음악을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연주자”라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등 대곡(大曲)을 중점적으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의 결선곡 역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코스모스악기 매장에서 (왼쪽부터) 박재홍, 선율, 최현호, 노현진, 김송현, 이윤수, 정재원 피아니스트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박재홍은 2014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서 데뷔했다. 2015년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콩쿠르 1위, 2016년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주니어 부문 1위에 올랐다. 올해 경기 필하모닉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시리즈와 더하우스콘서트의 브람스 실내악 축제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국내 음악계의 조명을 받았다. 허명현 경기아트센터 주임은 “관현악의 흐름과 화성 변화에 대한 귀가 열려 있고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협연할 때에도 지휘자와 단원들의 요구에 귀기울이고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해외 유학 없이도 국내에서 음악 영재의 재능을 조기 발굴하는 예술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선희 코리안 심포니 대표는 “젊은 연주자들을 육성하고 일반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국 음악계의 모습에 유럽 음악계에서도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