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5살배기 아이가 4년간 돌봐준 미국 외교관 부부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 됐다. 이 부부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3년 6개월 동안의 긴 소송을 벌인 끝에 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았다.
13일 검찰과 부산변호사회 등에 따르면, 다섯 살 A양은 4년 전 동남아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동 긴급 구호 기관에 맡겨졌다. 어머니는 지난 2019년 친권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귀국했고, 단독 친권자였던 아버지도 같은 해 10월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A양을 포기했다.
당시 서울의 주한 미 대사관에 근무 중이던 데이비드 제 전(前) 부산주재 미국 영사 부부는 그해 6월 지인에게 A양의 딱한 소식을 듣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돌봤다. 제 전 영사는 3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 미 국무부 외교관이 됐고, 외교관 동료인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었다. 부부는 A양을 딸처럼 키우며 정이 들었고 이내 입양까지 마음먹었다. 제 전 영사는 주변에 “입양은 사랑을 주고받는 동시에 ‘곱하기’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부부는 그해 11월 A양을 민법상 친양자로 입양하겠다고 서울가정법원에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항소도 했으나 “A양이 입양특례법상 보호가 필요한 아동인데, 외국인이 갖춰야 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다. 입양특례법에 외국인의 경우, 전문 아동 보호 시설이나 후견인의 입양 허용 신청 및 동의, 친부모의 정식 친권 포기, 거주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 등이 필요하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21년 7월 부산주재 영사로 부임하면서 A양을 포함해 세 아이를 데리고 부산에서 살았다. 부부는 법적 요건을 갖춰 작년 4월 다시 부산가정법원에 입양 허가 신청을 냈다. 소송을 맡은 백인화 변호사는 “홀트아동복지회 등 전문 기관이 아니라 외국인이 직접 국내에서 입양을 신청하는 사례는 제 영사 부부가 처음”이라고 했다.
검찰과 부산변호사회도 도왔다. 부산지검은 공익적 비송사건 법률 지원 담당 검사를 붙였고, 부산지검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는 부산변호사회는 이승애 변호사를 후견인으로 선임했다. 소송 과정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시작으로, 전문 시설·후견인 선정, 후견인의 재판 참여 인가, 구청장 승인, 양부모와 아이 간 친밀한 관계 확인 등 복잡하고 험난했다.
이러는 동안 작년 8월 제 전 영사의 임기가 끝나 가족 모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내법상 A양을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정해진 시기에 귀국하지 않으면 외교관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제 전 영사는 어쩔 수 없이 귀국했지만 아내가 휴직을 한도까지 내고 부산에 남아 A양을 돌봤다.
지난 연말 아내의 휴직 기간이 끝나자 남편인 제 전 영사가 다시 휴직하고 부산으로 날아왔다. A양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영사 임기 때는 관사라도 있었지만, 이후엔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부산가정법원은 지난달 31일 A양의 입양을 허용했다. 이 결정은 14일 확정된다. 검찰 관계자는 “양부모와 A양은 14일 이후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A양 후견인이었던 이 변호사는 “지난 4년간 A양은 그늘 없이 명랑하게 잘 자랐다”며 “이런 상황을 법원에 그대로 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