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프랑스 북부 그하블린 해변 인근에서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는 난민 신청자와 이주민들이 고무보트에 올라타 있다. 최근 영국에선 자국으로 오는 난민 신청자와 이주민을 르완다로 보내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 대상자를 선별해 구금하는 조치가 29일 시작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오는 7월 첫 르완다행 비행기편을 띄운다는 계획이다. /AFP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자국으로 오는 망명 신청자와 불법 이주민을 6600㎞ 떨어진 동아프리카의 내륙 국가 르완다로 강제로 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영국 내무부는 29일부터 르완다 이송을 위한 불법 이주민 등의 구금 작업을 시작한다고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밀려드는 이주민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지는 영국이 르완다에 이주민을 보내고, 르완다는 그 대가로 영국으로부터 돈을 받는 방안이다. 과도한 불법 이주민 문제로 골치를 앓는 영국, 돈이 필요한 르완다가 각각의 필요에 따라 ‘윈-윈(win-win, 둘 다 이득)’ 하는 해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영국인과 인권단체 등은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으로 간 아프리카·중동의 망명 신청자들을 아프리카의 제3국으로 보내는 것이 비인도적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영국 정부는 7월 이주민 150여 명을 태운 르완다행 첫 항공편을 띄운다는 계획이다. 영국으로 간 이주민의 르완다 이송은 앞서 지난 22일 영국 의회가 이를 허락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가능해졌다. 영국 정부는 불법 이주민을 얼마나 르완다로 보낼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들을 받아주는 일종의 ‘착수금’으로 3억7000만파운드를 르완다에 지급하고, 이주민 1인당 2만파운드를 추가로 주되 이주민이 300명이 되면 1억2000만파운드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하는 등의 방안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르완다에 결과적으로 총 5억파운드(약 8600억원) 이상의 금액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르완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액수다.

르완다는 8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4년 제노사이드(인종 대학살)의 상흔을 딛고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나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고릴라 생태 관광으로 해외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연평균 9%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여전히 1000달러를 밑돌고,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 중인 폴 카가메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으로 국제사회에서 비판받는 나라다.

지난 26일 프랑스 북부 그하블린 해변 인근에서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는 망명 신청자와 이주민들이 고무보트에 올라타고 있다. 최근 영국에선 자국으로 오는 망명 신청자와 이주민을 르완다로 보내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 대상자를 선별해 구금하는 조치가 29일 시작한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오는 7월 첫 르완다행 비행기편을 띄운다는 계획이다. /AFP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르완다 강제 이송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세운 이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주민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AP 등 외신들에 따르면 영국행 이주민은 2018년 299명에서 2022년 4만5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4년 새 150배로 폭증한 것이다. 이 이주민들은 육로를 통해 유럽 본토로 먼저 진입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 불법 브로커 등에게 수천달러를 쥐여주고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건너왔다고 조사됐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서유럽 주요국들이 몰려드는 이민자 탓에 치안 불안 등 각종 부작용을 겪는 것을 지켜본 영국은 한 차원 강력한 불법 이주민 이주 계획을 세웠고, 이에 집권당인 보수당이 주도해 르완다와 난민 이송 협의를 추진했다고 알려졌다.

2022년 4월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가 이주민 강제 이송 구상을 처음 발표할 당시만 해도 논란이 너무 커서 실현 가능성은 작다고 예상됐다. 특히 같은 해 6월 영국 정부가 이주자 약 30명을 비행기에 실어 르완다에 보내려 하자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이륙 금지 내린 후엔 계획이 좌초됐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영국 법원까지 ‘르완다는 난민을 보낼 정도로 안전하지 않다’며 정책이 위법이라고 판단했고, 그해 11월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영국 보수당 정부는 의회와 함께 한결같이 이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 과정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연상케 하는 이기적인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사법부의 결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의회를 동원한 끝에 정책을 관철시켰다. 제임스 클레벌리 내무 장관이 지난해 12월 ‘르완다를 안전한 나라로 선포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하원에 발의하며 총대를 멨다. 만일 르완다 입국 심사대에서 난민 신청이 거부될 경우 다시 제3국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허점도 최대한 보완했다. 이후 절차를 거쳐 지난 22일 보수당이 다수(650석 중 346석)인 하원과 귀족이 중심인 상원의 합의를 통해 (르완다를 안전하다고 규정한) 법안이 최종 가결됐다. 이주자들을 돈 주고 르완다로 내보내려는 목적만으로 ‘원 포인트 법’을 만드는 무리수까지 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인 의회라면 상식적이지 않은 법안은 부결시켜야 하지만 영국 보수당은 이를 통과시키는 무리수를 두었다”고 평가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와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영국 정부를 겨냥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 법안은 영국의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방해하고 전 세계에 위험한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수낙 총리는 법안 통과 직후 “이 기념비적인 법안이 프랑스 북부에서 영불해협을 건너는 기록적인 수의 이주민을 억제하고, 이들을 밀입국시키는 조직들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의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난민 신청자들의 르완다행을 막은 ECHR을 탈퇴해버리자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라고 전해졌다.

한편 영국에서 르완다로 강제로 보내질까 우려하는 이주자들이 영국을 탈출하면서, 영국의 이웃 나라 아일랜드는 불법 이주민이 급증해 비상이 걸렸다. 헬렌 매켄티 아일랜드 법무 장관은 지난 22일 의회에서 “최근 아일랜드에 유입된 망명 신청자 80% 이상이 영국 땅인 북아일랜드에서 국경을 넘어왔다”며 “망명 신청자를 영국으로 효과적으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하는 긴급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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