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제 관료, 재정학자 등 120명이 회원인 건전재정포럼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 5년간 악화된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한 8가지 정책 제언을 발표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는 “연금 개혁 등 미뤄지고 있는 개혁을 서둘러야 하고 재정 건전성을 지킬 준칙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①숫자 채우기 급급한 공공 일자리 줄여라

문재인 정부는 거의 매년 ‘수퍼 예산안’을 짜서 재정을 확대했다. 특히 세금 일자리 사업 확대가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건전재정포럼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일자리 숫자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②학령인구 주는데 초·중등교육 예산 과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계속 늘어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균철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중등교육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하지만, 고등 교육은 평균에 미달한다”며 “초·중등교육 과잉 지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③부가가치세율 15%까지 올려야

고령화로 늘어나는 복지비 지출을 감당하려면 지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세수 확충 방안도 찾아야 한다. 3대 세목(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중 소득세·법인세는 박근혜 정부 이후 지속적인 세율 인상이 이루어져 왔으나 부가가치세율은 1977년 도입 이후 10%로 고정됐다. 부가가치세를 운영하는 36개 OECD 회원국의 평균 세율(19.3%)의 절반 수준이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가가치세율을 1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④국민연금, 소득대비 보험료 9%→17%로

건전재정포럼은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소득 대비 보험료의 비율을 현행 9%에서 17%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5년마다 한 살씩 상향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2018년 정부안처럼 소득대체율을 45~50%로, 연금 보험료율은 12~13%로 높이는 수준의 땜질식 처방을 동원할 경우 적립 기금은 2063년경에 소진되고, 2065년에 보험료율은 35.6%로 높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⑤공약 비용 추계하는 기구 만들라

박노욱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선 등에서 주요 정당의 공약 비용을 추계할 전문기관을 만들어 공약 실현에 들어갈 재정 규모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발표해야 포퓰리즘 공약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CPB)·아일랜드(재무부)·호주(의회예산국)는 전문기관을 통해 주요 정당의 공약 비용 추계를 제도화하고 있다.

⑥공공기관의 민간시장 침범 막아야

포럼은 민간 역할까지 떠맡아 비대해진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의 민간시장 잠식은 주무 부처와 예산 당국의 방치하에 계속 확산 중인데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중 부채가 많은 39개 기관을 보면 2020년 521조6000억원이었던 부채가 2024년에 615조8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⑦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제정하라

재정준칙이란 법률로 재정적자, 국가채무 등 재정총량에 대한 한도를 설정하는 것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국형 재정준칙’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핵심인 한도 설정을 시행령에 위임했는데 이를 법률로 규정하고 즉각 시행해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⑧기득권 반발 막을 정부 개혁 기구 설치

포럼은 “역대 정부가 재정지출 조정이나 공기업 개혁을 추진했음에도 성과는 별로 없었다”며 “기존 제도로 혜택을 받고 있는 기득권층의 반발이 컸기 때문인데 강력한 추진을 위해서는 한시적 정부 개혁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외환 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기획예산처에 ‘정부개혁실’을 설치하고 공기업, 정부 산하기관 개혁을 추진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