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프랑스 대선에서 지스카르 데스탱이 미테랑에게 진 뒤 TV 카메라 앞에 앉았다. 데스탱은 연설 끝에 한참 뜸을 들이더니 "오 르부아(Au Revoir)!"라고 했다. '또 보자'는 흔한 인사말이다. 이튿날 신문들은 이 말이 적절치 않다며 '아듀(Adieu)'라고 해야 옳다고 고쳐줬다. '아듀'는 다시 볼 기약이 없을 때 하는 인사다. '데스탱의 오 르부아'는 정치 욕심을 못 내려놓는 승복 연설을 비꼴 때 단골로 인용된다.

▶데스탱은 7년 뒤 회고록에서도 "지지율 60%였던 내가 졌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했다. "졌다"고 말하기란 고통스럽다. 어느 미국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는 "선거에서 진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연장으로 손톱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패배 연설은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꼭 쓸 일이 생긴다"는 말도 있다. 패배 연설을 너무 잘해도 "진작 그렇게 했으면 당선됐지" 하는 타박을 받는다.

▶2008년 매케인 미 공화당 대선 후보는 패배가 확정된 뒤 "조금 전 오바마 의원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고 말머리를 꺼냈다. 지지자들이 "우∼" 야유를 보내자 두 손을 흔들어 "제발요, 제발요" 하며 가라앉혔다. "오바마 의원은 자신과 나라를 위해 위대한 것을 이룩했습니다." 매케인은 며칠 전 세상을 뜬 오바마 외할머니에게도 애도를 표했다. 그는 선거에 졌지만 값진 명성을 되찾았다. 2000년 앨 고어의 승복 연설도 빼어났다. "외국 스파이가 미국에서 훔쳐갈 건 인텔 마이크로칩이 아니라 고어 연설문"이라고들 했다.

문재인 후보가 19일 밤늦게 민주당 당사에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역부족이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는 2분쯤 원고를 읽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 통합과 상생 정치를 펴주실 것을 기대하며 나라를 잘 이끌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네거티브 선거전에 지친 유권자 귀에 모처럼 시원한 댓잎 소리처럼 들렸다.

▶선거 당락이 갈리면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 전화를 거는 게 여러 나라에서 관례다. 개표가 끝나면 으레 한밤중이다. 그래도 패자가 승복 연설을 한 뒤에야 승자가 연단에 오른다. 우리 당선인은 상대의 승복 연설이 있기 전에 꽃다발도 받고 소감도 말했다. 당선인은 이튿날 문 후보에게 위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패자를 지지한 1469만 유권자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넬 만하다. 관례는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