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 신관 1층. 아랍어로 ‘기도실’이라고 쓰인 팻말이 붙은 공간에 장판 공사가 한창이었다. 고대안암병원은 이달 초 무슬림 환자를 위한 기도실 신설을 결정했다. 올해 초부터 지난 8월까지 내원한 중동 환자 수가 작년 한 해 전체 중동 환자 수를 넘어설 정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 중인 아랍에미리트(UAE) 출신 압둘라 알마즈루이(39)씨는 “그동안은 휴게실에서 기도해야 했는데, 따로 공간이 마련돼서 기쁘다”고 했다. 병원은 장판과 벽지 공사를 마무리한 뒤 탁자와 이슬람 경전(쿠란)을 배치하고, 기도실 출입문도 아랍풍으로 꾸밀 예정이다.
코로나 이후 한국 의료 서비스를 찾는 무슬림 환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중동 큰손’맞이에 병원들이 분주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중동 환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8963명) 대비 70%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내 대형 병원 12곳을 주로 찾는데, 자신들에게 적합한 환경을 까다롭게 따진다고 한다. 고대안암병원 관계자는 “무슬림 환자들이 내원할 때 병원에 기도실이 있는지 꼭 물어본다”며 “이런 요구에 맞춰 기도실 신설을 결정했다”고 했다. 무슬림들은 기도실 외에도 할랄 음식, 아랍어 통역, 아랍 방송 송출, 이태원 모스크와의 거리 등을 병원 측에 묻는다고 한다.
이들이 ‘큰손’으로 불리는 건 UAE·쿠웨이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민 복지 차원에서 해외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히잡 착용, 대가족 문화 등 종교·문화적 이유로 VIP실이나 1인실을 주로 이용한다.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VIP실 하루 입원비는 100만~200만원 수준이다.
무슬림 환자가 늘어나자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연세의료원·이화의료원 등도 별도 조치에 나섰다. 기도실은 따로 마련하지 않고 있지만, 무슬림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화의료원 측은 “중동 아랍 환자가 워낙 많아져서 기도할 수 있도록 빈 병실과 카펫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도 병실 안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 방향을 표시해 기도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정부도 환자 유치를 위해 직항 항공편 확대를 중동 국가들과 협의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6일 기존 15회였던 UAE 직항 항공편을 21회로 늘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홍승욱 국제의료전략단장은 “중동 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 서비스 이외에도 교통 인프라·비자·숙박비 등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필요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