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가 2015년부터 중단된 한일 통화 스와프(교환) 협정을 8년 만에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복원된 스와프 규모는 100억달러다. 한때 700억달러까지 불었던 것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수출에 이어 금융 분야까지 한일 경제 관계가 복원됐다는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9일 “추경호 부총리가 일본 재무성에서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과 재무장관회의를 갖고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에 합의했다”며 “2015년 2월 종료 당시와 같은 100억달러 규모로, 기간은 3년으로 체결했다”고 밝혔다. 통화 스와프는 필요시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사전에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빌려오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말한다.
이번 통화 스와프는 달러를 매개로 한 방식이다. 한국이 일본에 원화를 맡기면 일본은 달러를 내주고, 반대로 일본이 엔화를 한국에 맡기면 우리는 달러를 내주는 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5년 종료 당시도 한일 통화 스와프가 달러 스와프였다는 점을 감안해, 이번에도 달러 방식으로 스와프를 체결한 것”이라며 “이번엔 규모보다는 중단된 한일 통화 스와프를 재개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외환 당국에 따르면, 이번에 복원된 달러 스와프와 별도로 원화와 엔화를 교환하는 방식의 통화 스와프도 한일 간에 재개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 최근 복원한 데 이어 금융 분야까지 양국 경제 협력을 복원하는 상징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재부는 “외환·금융 시장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통화 스와프는 비상시에 쓰는 자금이라서 우리 금융 안전망을 추가로 확충하고, 대외 충격이 있을 때 원화 변동성을 막아주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우리 외환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은 상태라서 한일 통화 스와프로 원화 가치가 올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일 양국은 2001년 달러 스와프 방식으로 20억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시작한 이래 원화와 엔화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넓히면서 스와프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했었다.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 위기 대응을 위해 300억달러로 확대했고, 2011년 10월엔 유럽 재정 위기 등에 대응해 700억달러까지 불렸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2013년 이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2015년 통화 스와프가 중단됐다.
기획재정부는 “양국 재무장관은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문제 등 글로벌 복합 위기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상호 공조하기로 했다”며 “한일 세제 당국 간 실무 협의체도 운영하고, 내년엔 한국에서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