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주도의 한 관광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작업 중이던 60대 근로자가 이동식 방음벽에 깔려 숨졌다.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들어갔다./뉴스1

보험이란 예고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커다란 위험에 대비하는 금융 상품입니다. 갑자기 큰 타격을 받았을 때 견딜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의미죠. 작은 위험이라면 굳이 보험까지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KB손해보험이 대형 로펌(율촌·화우)과 손잡고 기업들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작업 과정에서 사고로 인명이 희생당하는 경우를 막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지만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는 의미죠.

KB손해보험은 다음 달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처벌받게 될 때 기업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관련 상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다른 여러 손해보험사도 비슷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보험사와 로펌들은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는 요령을 컨설팅해주는 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보험사가 기업 고객들을 로펌에 소개해주고 공동으로 자문에 응한 뒤 수수료를 받는다는 거죠.

근로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례를 막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사측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 법률이 사고를 막자는 것보다는 기업을 혼내주자는 데 방점을 찍은 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 보험 상품까지 등장한다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합리적인 규제가 아니라 기업 옥죄기가 됐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당초 입법 의도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업들이 보험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규제는 수긍할 수 있을 때 매끄럽게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경영진들에게 과도한 위험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수위로 조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