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 반가웠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한국 영화 최초의 세계 영화제 그랑프리 획득이다. 칸·베네치아·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우리나라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표현한 이 아웃사이더 예술인을 위해서도 축하할 일이다. 또 하나는 조금 이율배반적이다. 욕망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을 때 콤플렉스는 고착되는 법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화조차 금메달에 집착하는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오랫동안 문학과 영화 담당 기자로 보낸 탓에 자주 들었던 질문이 있다.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한국 영화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 여부였다. 우리 문화의 자긍심에 대한 민족적 응원이라고 이해했지만, 어느 때는 지나치지 않은가 우려할 만한 집착이었다. 문학이나 영화는 국가 대항 올림픽이 아니고, 숫자를 우선하는 등수 놀이 게임과는 다르다. 이제는 수상에 몰두하기보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2008년 칸영화제 시상식 발표 직전의 프레스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해였는데, 공교롭게도 경쟁 부문에 진출한 22편 중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그해 아시아 영화 중 유일한 본선 진출작은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24시티'였다. 시상식 발표 몇 시간 전부터 중국 기자 수십명이 기성(奇聲)을 연발하며 "중국이 상을 받을 차례"라고 연호하는 것이었다. 영미권과 유럽 기자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중 한 프랑스 영화 잡지 기자는 이 모습을 일종의 해외토픽 삼아 송고했다. 그해 '24시티'는 수상에 실패했다.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국제 펜(PEN)대회 현장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두 명을 만났다.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와 프랑스의 소설가 르 클레지오였다. 인터뷰에서 두 작가는 각기 다른 문학관을 내세웠다. 소잉카는 독재 권력에 대한 투쟁이 자기 문학의 엔진이라고 했고, 르 클레지오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했다. 1980년대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살고 있다면 소잉카에 대해 지지를 보냈겠지만 2012년 현재는 르 클레지오의 고백에 더 공감했음을 고백한다.
해외에서 따오는 금메달 하나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작은 상 하나를 받아도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시대가 있었다. 전쟁과 가난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고, 지금도 기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금메달만 추앙했던 올림픽조차 이제는 '최고'보다 '최선'에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다. 200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나이폴은 수상 통보를 듣고 "매우 놀랐다. 나는 나 자신 이외에 어느 것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멋진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문화는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그런 정도의 경제적·문화적 수준은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