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 체육관. 3·1절 공휴일에 민사고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학식을 치렀다. 이날은 개교 1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단상에는 영어로 된 '10주년 민족사관고' 현수막이 걸렸고 입학식의 거의 전 과정은 영어로 진행됐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앳된 얼굴의 남녀 신입생 153명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으로 시작되는 교사의 기미독립선언문 낭독에 귀를 기울였다.
'똑같은' 고교만 있던 시절, 이름부터 특이한 민사고는 '한국판 엘리트교육의 신모델'을 만들겠다며 새로운 교육실험에 도전했다. 민사고가 시작한 학습방식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국어, 국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학교생활의 거의가 영어로 진행됐다. 영어원서로 된 교재에, 원어민 교사가 강의를 하고, 숙제도 영어로 해야 했다. 일상화된 영어 수업과 3년간 읽는 수십권, 수백권의 영어원서와 소설책은 자연스레 학생들을 '영어박사'로 만들었다.
교사들의 수준과 이들에 대한 대우도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한 반 15명 정원에 석·박사급 교사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일반 교사들 월급의 2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주입식 교육도 과감히 버렸다. 철저한 토론식 수업과 수준에 따른 속진(速進)학습을 원칙으로 했다. 우수한 학생은 상급 학년 선배와 섞여 수업을 받는다. 학생들은 언제든 부족한 과목에 대해 강의 개설을 요청하는 등 '자기주도학습'이 일상화돼 있다. 무감독 시험제도 처음 도입했다. 학생 한 명이 평균 4개의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교과 외 활동'도 활발하다.
졸업조건으로 내세운 '6품제'도 이 학교만의 독특함이다. 영어품(일정 수준 이상의 토플 성적), 심신수련품(태권도와 검도의 단), 예술품(전통악기 연주능력), 봉사품(80시간 이상), 독서품(국제계열은 영어원서 50권), 한자품(3~5급)이 그것이다.
1996년, 최명재(崔明在·79)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이 '민족의 지도자를 기르겠다'며 설립한 민사고는 화제를 모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개교 당시 30명의 우수한 남학생들이 전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이 중 19명이 1년 새 자퇴했다. 내신이 불리한 데다, 시간표가 빈번하게 바뀌는 등 교과운영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1기로 졸업한 김성진(27·서울대졸, 행정사무관)씨는 "한복 입고 전통무예를 시키는 등 '황당한' 분위기였고, 대학진학에 불안해 한 친구들이 바로 짐을 쌌다"고 회고했다.
민사고는 이 난관을 '유학반'이라 불리는 '국제계열'을 만들면서 돌파했다. 고교에 해외유학반이 생긴 건 이때가 처음이다. 교육부장관을 지낸 이돈희 교장은 "초창기 국내 대학에선 내신정책 등에 묶여 영재학교 출신을 받아줄 여건이 안 됐다"며 "재빨리 눈을 해외로 돌린 것이 성공의 첫째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런 민사고의 교육실험은 대성공이었고, 그간의 대입성적이 이를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다. 올 2월까지의 10년간 졸업생은 432명. 대부분 국내외 명문대에 진학했다. 올해 국제반 졸업생 47명 중 이미 18명이 수시모집을 통해 하버드대, 코넬대, 프린스턴대 등에 합격했다. 민사고가 개설한 AP(Advanced Placement: 대학 과정을 고교에서 미리 이수하는 것) 4개 교과목은 최근 미국의 칼리지보드(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 주관)로부터 최우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중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선발절차, '귀족학교'라는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은 부담이다. 학교측은 올해 전국 시·도 추천으로 저소득층 자녀 중 영재성이 있는 중학생을 선발해 직접 무료 지도하기로 했다.
민사고의 교정에는 개교 때부터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을 위한 노벨상 수상 좌대(座臺)가 마련돼 있다. 최명재 이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 좌대가 우리학교 졸업생들의 흉상으로 모두 채워질 때까지 밤잠을 설치는 노력을 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