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4일 중구 예장동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인 ‘기억의 터’에 설치된 ‘민중미술가’ 임옥상(73)씨의 작품 2개를 철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위안부 후원 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긴급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정의연은 4일 아침 철거 현장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기억의 터’를 둘러싸는 퍼포먼스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연은 3일 1500여 명 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서울시가 철거하려는 작품은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추진위원과 모금에 참여한 시민 2만여 명 등이 만들어낸 집단 창작물”이라면서 “성추행 가해자 임옥상을 핑계 삼아 여성 폭력을 한일 관계에 이용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까지 통째로 지우려는 서울시를 규탄한다”고 했다.
‘기억의 터’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6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당시 설립 추진 위원회가 시민 2만여 명의 성금을 모아 옛 일제 통감 관저 자리에 조성했다. 임씨가 공원을 기획하고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이라는 작품 2개를 설치했다.
지난 7월 임씨가 여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혐의를 시인하고 사과까지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임씨의 작품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공원에 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임씨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서울시는 시립 시설 내에 있는 임씨 작품 6개를 차례로 철거 중이다. ‘기억의 터’에 있는 작품 2개는 4일 철거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30일 시의회에서 “추모 공원 자체를 철거하는 게 아니라 임씨 작품만 철거하는 것”이라며 “이후 설립 추진 위원회와 협의해 새 작품을 설치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고 관련 연구를 하는 여성 인권 단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후신으로 2018년 출범했다. 2020년에는 기부금 유용, 회계 부정 등 의혹에 휩싸였고,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의원(무소속)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윤 의원은 ‘기억의 터’ 조성 당시 설립 추진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기억의 터’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최영희 전 국회의원(민주당)과 박수빈 서울시의원(민주당)은 “대안으로 임씨 작품은 그대로 두고 임씨의 이름만 지우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최 전 의원은 여성 인권 단체 간부 출신이고, 박 시의원은 민주당 서울시당 여성위원회 소속이다. 최 전 의원은 최근 “서울시의 철거를 멈춰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냈지만 법원은 “다툴 법익이 없다”며 각하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서울시 안팎에선 “성 착취 피해자들(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사람들이 성범죄자의 작품을 보존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 “철거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진보 성향 단체이지만 전태일재단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단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서울 청계천에 설치된 임씨 작품인 ‘전태일 동상’ 철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재단 내부적으로는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재단은 이번 주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전태일 재단의 한 관계자는 “임씨 사건 때문에 숭고한 열사 정신이 훼손될까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