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인들에게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입니다.”
최근 본지 주최로 열린 ‘산업대전환 좌담회’에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이 한 말이다. 과거 세계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를 만든 스페인의 기업인 아만시오 오르테가 전 인디텍스 회장의 ‘사양 산업은 있어도 사양 기업은 없다’는 말을 비틀어 변화를 선도하지 못한 기업과 산업은 도태되거나 사라지겠지만, 변화와 혁신을 한다면 어떤 산업이나 기업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사실 이른바 사양 산업에 있으면서 변화를 통해 성공한 기업들도 많고, 섬유나 안경같이 과거엔 사양 산업으로 분류됐지만, 혁신을 통해 산업 전체가 새롭게 뜨는 경우도 많다. 수백 년 된 기업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에 올라탄다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제품과 공정의 혁신뿐 아니라, 조직 구조와 기업 문화, 복지 등에도 혁신을 통해 변화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혁신과 변화에 목마른 국내 기업들
AI(인공지능)·챗GPT 등의 확산으로 4차 산업혁명이 성큼 다가온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혁신’과 ‘변화’에 대한 갈증은 크다. 지난 5~6월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기업 임직원 102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혁신 수준과 관련한 질문에 ‘시작은 했으나 진행이 더딘 편’이라는 응답이 40.4%로 가장 많았고,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답도 18.7%에 달했다. ‘보통이다’,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26.2%, 13.6%, 1.2%로 모두 합쳐도 절반에 못 미쳤다. 다만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혁신 수준을 5단계로 나눠 평가해 달라’는 항목에서는 중간 단계인 ‘적용 중’을 고른 기업이 28.6%로 가장 많았고, 더 높은 ‘정착’과 ‘활발히 진행’이라는 답도 각각 23.3%, 5.5%로 나타났다. 우리 산업 전반의 혁신 수준은 비교적 높게 보지만, 정작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혁신 수준에는 상대적으로 짜게 답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만큼 국내 기업인들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세계 7대 혁신기업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2023년 세계 50대 혁신기업’에서 7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BCG가 2005년 첫 보고서를 낸 이래 해마다 50대 기업에 포함됐다. 폴더블폰과 같이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 취임을 전후로 조직문화 혁신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조직문화 혁신을 강조했다.
SK그룹 또한 제품을 넘어 기후위기, 사회안전망, 청소년 문제, 저출산 등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하며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사회 각계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연결하고 협력하면 더 많은 사회문제를 풀 수 있다”면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기업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LG그룹의 LG에너지솔루션도 다양성·공정성·포용성을 중심으로 기업문화 향상에 나서고 있다.
◇제품·공정 혁신은 기본
성장을 위한 제품과 공정 혁신도 활발하다. 현대차그룹은 올 4월 경기 화성시 오토랜드화성에서 맞춤형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을 가진 데 이어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만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국면에서 전기차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LG화학은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이라는 3대 신성장동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사의 체질을 바꿔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2030년 매출을 지난해의 2배가 넘는 60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수소 사업을 확대하는 포스코그룹은 2050년 수소 생산 700만t 생산 체제 구축을 위해 청정수소 생산 및 운송부터 저장, 활용에 이르기까지 수소사업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AI를 활용한 고객 맞춤형 마케팅, 신시장 개척을 통해 변화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