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이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 책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재들의 실패’(동방미디어)는 ‘빅쇼트’ 10년 전에 벌어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의 전모를 그린 논픽션이다.

로저 로웬스타인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로 금융시장을 취재하면서, 투자 호황기였던 199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 남미, 러시아를 거쳐 미국까지 번졌던 1990년대 후반 금융 위기를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읽고 발품을 들여서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인터뷰를 해낸다. 그 결과,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LTCM이라는 헤지펀드가 어떻게 전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다 4년 만에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어쩌다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월스트리트의 거물 은행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전긍긍하게 되었는지, 독자는 탄식하며 깨닫게 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시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LTCM은 합리와 질서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본다. 이성적 투자자라면 신중하게 위험을 예측하고 시장의 비효율을 계산해서 큰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조지 소로스와 같은 투자자는 시장을 예측 불가능한 생물로 본다. 인간은 욕망과 공포에 따라 움직인다. 이론상으로는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가능성 희박한 일이 인간들의 심리가 시장에 개입되면 극단적 확률을 뚫고 현실에서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LTCM의 실패를 ‘인간적 요소(human factor)’를 잊고 자신들의 똑똑함을 투자 수익으로 증명하려 한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책에서 묘사하는 1990년대 초 미국은 기시감을 들게 한다. 주식시장은 매일 신기록을 세우고, 체육관과 공항에서 주식 전광판이 번쩍거리며, 백만장자가 줄줄이 탄생하는 시대. 어느 날 거품이 터지고, 파티가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 20년 전과 10년 전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엔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