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 반대하고 나섰다. 야당 개정안은 회사의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직무를 수행할 때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안에 반대해 온 국민의힘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겠다고 했는데, 민주당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에 금감원장이 뜬금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이 원장의 월권 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과도하게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이 원장이 맡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상법의 소관 부처가 아니다. 법률상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이 업무의 전부다. 이 원장 자신이 검찰 출신이라고 해서, 자신이 상법을 관할하는 법무부의 장관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문제에 대해 그간 정부 내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부는 국내 증시에 상장된 2600여 법인의 합병·분할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을 더 보호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민주당 안대로 상법을 개정해 100만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을 간섭하는 대신, 낮은 규제 허들을 택한 것이다. 이 원장은 이 같은 정부의 ‘원 보이스’를 무너뜨렸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날 이 원장의 발언에 대해 “어이없다. 직을 걸겠다고 했으니 이참에 직을 그만두고 물러나면 되겠다”고 했다.
시장에선 이 원장 발언의 순수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상법이 야당 뜻대로 바뀌면, 소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회사의 이사가 과연 총주주의 이익에 충실했는지’ 따져보려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로펌의 블루오션이자, ‘배임죄’를 무기로 가진 검찰 몸값이 올라갈 수 있다. 오는 6월 6일, 3년 임기를 마치면 거물급 변호사로 변신할 수도 있는 이 원장에게 불편한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