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비판하는 일부 국무위원과 정치권에 “고민 좀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은 총재가 정치 현안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최 권한대행 흔들기가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2일 한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미리 배포된 신년사를 읽던 중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며 “지금 최 대행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비판을 할 때는 그렇게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에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답도 같이 하시는 것이 좋겠다”며 원고에 없는 말을 했다.
이후 기자실을 찾은 이 총재는 최 권한대행에게 더 힘을 실었다. 그는 “최 권한대행이 맞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외부에 ‘우리 경제는 정치와 분리돼서 간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큰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민 좀 하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신용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기 굉장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답답하다”고도 표현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계엄 사태 후 외부 인사들과 간부들에게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2014년부터 8년 동안 IMF(국제통화기금) 아태 담당 국장을 지낸 ‘국제통’인 이 총재에게 외국 정치·경제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고, 이 때문에 이 총재가 현재의 정국 혼란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총재는 비상계엄 사태 후인 지난달 5일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한 해외의 충격이 더 큰 것 같다”며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연락이 오고 있다”고 했다.
앞서 이 총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국무총리의 직무가 정지되기 전, 최 권한대행과 함께 한 총리를 찾아 헌법재판관 임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 부총리가 사의 표명 의사를 밝혔을 때는 “경제 사령탑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극구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