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초미세 소자 디스플레이(화면 표시 장치) 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종민(67)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이 학교 명예교수(Emeritus Professor)가 됐다. 지난 9월 정년을 맞은 지 3개월 만이다.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 등 쟁쟁한 인물들이 오른 명예로운 자리다.

그는 삼성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탄소나노튜브 디스플레이 등을 개발한 기업 연구소 출신 과학자다. 국내외에 특허 총 250여 개를 냈고,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 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03년엔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과 함께 삼성전자 내 노벨상으로 불리는 ‘삼성 펠로’에 뽑혔다. 그러다 2012년 3월, 돌연 사표를 내고 영국 옥스퍼드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돼 큰 화제가 됐다. 이어 2016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로 옮기며 한국인 처음으로 이른바 ‘옥스브리지(Oxbridge)’에서 모두 교수가 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옥스브리지는 영국 최고 명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김 교수는 좌절과 극복, 투쟁과 성공의 스토리가 집약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다. 경상북도 청도의 유복한 양조장집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수재 소리를 들으며 컸지만, 가세가 기울며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비가 공짜인 데다 서울대 등 명문대에 입학할 경우 장학금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갈 줄 알았지만 예기치 못하게 낙방, 한동안 철도 공무원으로 일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자” 싶어 한국해양대에 입학했지만 군대식 문화를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수험 생활을 다시 시작, 예비고사 기준 전국 500위권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1976년 홍익대 전자공학과 ‘특별 대우 장학생’이 됐다. 4년 장학금에 매달 생활비까지 주는 조건이었다.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지만, 폐결핵에 걸려 큰 고생을 했다. 졸업 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했으나 2년 만에 미국 뉴저지 공과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첫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선 가게에서 일하다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마디가 잘리는 사고도 당했다. 굴곡졌던 그의 인생은 당시 세계적 반도체 권위자였던 윌리엄 카 교수를 만나며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디스플레이 반도체 연구를 시작, 1988년부터 미국 육군연구소 연구원으로도 일했다. 1993년 귀국해 이후 20년 넘게 삼성전자가 세계적 첨단 디스플레이를 잇따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다.

김 교수는 옥스퍼드로 옮기며 연봉이 5분의 1이 됐다고 한다. 영국은 어렵사리 모셔온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지난 11년간 받은 연구비는 총 4300만달러(약 560억원)에 이른다. 그는 지난해 발광다이오드(LED) 수천 개와 센서, 배터리 등 디스플레이 모듈 전체를 직물처럼 만든 46인치 크기의 ‘스마트 직물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최근엔 ‘테라헤르츠파(THz)’ 발생 장치 연구를 시작했다. 테라헤르츠파는 빛과 전파의 속성을 모두 갖춰 다양한 투시(透視)와 비파괴 검사 기술에 활용될 수 있다. 엑스레이보다 훨씬 안전하면서, 전파나 초음파보다 깨끗하고 정확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반도체 불량품 검사, 사람 몸의 종양 탐지 등에 두루 쓰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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