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올드팝의 만남이라니. 천재적이다.”
지난달 개봉한 마블(Marvel) 시리즈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유튜브 메인 예고편 영상에서 위와 같은 댓글을 봤을 때, 마구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상은 시작부터 영국 하드 록 밴드 레인보의 ‘신스 유 빈 곤’ 전주를 튼다. ‘둥둥둥’ 장엄한 드럼 위로 딥 퍼플 출신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가 긁어낸 현이 울리는 순간, 영화 주연 7명이 우주복 차림으로 걸어나온다. 1979년 곡이 그리는 미래 지향적인 우주 공간. 명백하게 어긋난 시간대의 조합이지만, 반응은 “전율이 돋을 만큼 어울린다”는 호평 일색이었다.
올드팝을 활용한 드라마나 영화 홍보는 이제 일상 속 익숙한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마블 영화들은 최근 흥행 성적 부진에도 올드팝을 이어붙인 상상 속 장면들만큼은 찬사를 끌어내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2014년 1편 때부터 꾸준히 발매한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이 대표적 예. 극 중 주인공 피터 퀄이 애지중지하던 ‘워크맨’과 ‘믹스 카세트 테이프’에서 명명한 기획 음반이다. 어머니와의 어릴 적 추억이 그 안에 있다. 1970~1990년대 올드팝으로 영화 속 사운드트랙들을 담았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영화 장면이 바로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극 중에 음악들이 잘 녹아든다. 1편 모음집은 빌보드 200 1위까지 올랐다.
기타 소리로 금발 미남의 북유럽 신을 표현하는 영화 ‘토르’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초 작품인 ‘러브 앤 썬더’에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반복 연주 구간) 중 하나로도 손꼽히는 건스 앤 로지스의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을 엔딩 곡으로 골랐다. 전설적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연주가 흐를 때마다 토르는 멀게만 느껴지던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인간처럼 질투하고, 좌절하는 성장 서사의 주인공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쩌면 놀랍기까지 하다. 올드팝 발매 시기에 요즘 10·20 세대는 태어나지조차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열광 중이다. 지난해 여름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에 메탈리카의 1986년 발매곡 ‘Master of puppets’가 삽입됐을 때 소셜미디어 틱톡은 이 곡 기타 연주 영상을 찍어올리는 10대들로 붐볐다.
5분 남짓한 과거의 선율들이 열정적으로 떠올리는 상상 속 장면들. 수많은 추억이 만들어 준 연결고리가 그 안에 있다. 좋아하는 올드팝을 직접 기타로 연주해 온라인에 올리는 요즘 10대 모습은 사실 과거 세대가 하숙집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던 카세트테이프 추억의 미래형 변주일 것이다. 가슴 뛰는 멜로디에 대한 선망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는다. 현실 속에 없는 것들을 현실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야 하는 영화와 드라마에, 이보다 더 뛰어난 선택지가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 듣는 최신 음악도 언젠가 수십년 뒤 누군가를 열광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녹아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