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당신이 보고서를 썼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너잖아!” 다른 피고인이 손가락으로 한나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보고서에 쓰인 필체와 한나의 필체를 비교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필체라고요?” 한나는 더욱더 불안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문가까지 부를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보고서를 썼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중에서

얼마 전 대통령 당선인 진영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을 국민투표로 끝내자고 제안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했고, 여당은 국민투표란 히틀러가 좋아할 일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부터 물어보라고 비아냥댔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법을 바꾸자고 했다. 야당도 여당의 반대야말로 히틀러식 독재라며 비난했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니 지혜로운 국민이 결정해주소서, 하는 모양새는 얼핏 민주적이고 국민 존중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 마음대로 발의한 사안마다 투표로 결정하자며 여론 몰이를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국민 몫이 된다. 히틀러 시대야말로 95.7%의 투표 참여, 88.1%의 찬성이라는 국민투표의 결과였다.

그 시절 독일인으로 살았던 소설 속 한나는 수용소의 가스실 살상에 일조했다는 혐의로 전범재판에 선다.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한나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운다. 한나는 읽고 쓸 줄 몰랐다. 보고서를 쓸 권한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문맹을 수치라고 여긴 그녀는 히틀러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선택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또 한 번의 국민투표는 필요 없었다. 여당이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을 강행 처리, 모두 통과시켰다. 국민투표로 얻은 과반의 의석수 덕분이다. 검수완박은 다수당 마음대로 해도 돼, 하고 허락한 국민투표의 결과물인 셈이다. 시대의 불행은 통치자들의 권력욕과 오판 그리고 무책임으로 시작된다.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완성된 입법독재는 결국 한나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희생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