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맞춰 추진됐던 여야(與野) 지도부의 16일 만찬이 무산됐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했고, 민주당은 “일정이 안 맞았다”고 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도 계속 미루고 있다. 여권에선 “민주당이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는 아무것도 협조해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5일 “이진복 정무수석이 박홍근 원내대표 등에게 16일 만찬 회동을 위해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도 남겼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더 나아가 민주당이 대통령 만찬 자체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우리와 정의당은 언제든 대통령 회동을 하면 좋다고 했는데, 민주당에서 명확하게 다른 날짜를 얘기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날짜도 논의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투표율이 낮은 지방선거에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열성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 참석했다가 강성 지지층의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서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건희 여사의 사진이 공개된 이후 윤 위원장이 역풍에 시달렸다”며 “대통령과의 만남에 협조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또다시 대통령을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 부담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일부러 대통령실 연락을 피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이진복 정무수석이 박 원내대표에게 수차례 통화했는데 응답이 없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박 원내대표는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최근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이진복 수석과 박 원내대표는 딱 한 차례밖에 통화한 적이 없고 그나마 최근엔 아예 교류가 없었다”며 “16일 만찬이 어려워 다른 날짜를 조율 중이었는데 언론에 만찬 날짜를 16일이라고 먼저 공개한 것은 ‘발목 잡기 프레임’을 만들어 우리 측에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한덕수 후보자에 대한 인준도 계속 미루고 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이날 총리 후보자 국회 인준 관련 의원총회에 대해 “16일 의총 시간이 촉박할 것 같다”며 “추가 경정 예산, 부동산 관련 의견을 수렴해야 해 시간이 안 되면 한 총리 후보자 인준 관련 논의는 다음 의총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 총리 후보자 인준을 위해 의총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본회의 표결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 후보자를 공식적으로 ‘부적격’이라 판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 후보자가 노무현 정권 당시 총리를 지냈고, 지방선거를 앞둔 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의식해 한 후보자 총리 인준의 문을 완전히 닫진 않은 상태에서 여론을 저울질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듯한 인상이 중·장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친명(親明·친이재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보면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 우리도 한 후보자를 인준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됐지만 인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한 후보자 인준과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 낙마를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 후보자와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한 후보자 인준 표결에 협조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문제 있는 장관 후보자를 철회하는 성의를 보여야 우리도 한 후보자를 인준할 명분이 생길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