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우리가 몸을 풀면 다들 우리만 쳐다봤다. 이상해 보였을 것”이라고 최근 세계 청소년 여자핸드볼선수권에서 비유럽 국가 최초로 우승한 대표팀 김진순 감독은 말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대체로 뛰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다리를 풀고 스텝·패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키 크고 팔 길고 힘과 기술력까지 뛰어난 유럽팀을 상대로 똑같이 경쟁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빠른 속도와 강한 체력, 짧고 정확한 패스, 척척 들어맞는 리듬으로 돌파했다. 중거리슛은 밀린 반면, 속공과 스틸은 압도적이었다.
김 감독은 “우리를 제외한 모든 팀이 같은 핸드볼을 했다. 우리는 빨리 움직이면서 협동하는 우리만의 핸드볼을 보여줬다”고 했다. 대회 MVP로 뽑힌 키 160㎝ 김민서는 “키 차이가 많이 날수록 공격이 더 쉬웠다”고도 했다. 공격할 때 그가 자세를 낮추면, 덩치 큰 유럽 선수들이 막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너무 빠르고 너무 달라서, 작은데도 잘하니까 멋있다고 응원 많이 받았다.” 작은 체격은 스포츠 세계에서 약점으로 통하지만, 약점이 결과적으로 승리를 불러오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본 고장 유럽에 밀리던 한국 펜싱도 한국 스타일을 찾아내며 강해졌다. 키 154㎝, 발 길이 213㎜의 남현희가 빠르고 현란한 스텝으로 2008년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면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키 크고 팔 길고 손기술 뛰어난 유럽을 넘기 위해 한국 선수들은 스텝 수가 유럽 선수 두 배에 이르도록 하체를 단련했다. 4년 뒤 런던부터 올림픽 메달이 쏟아졌다.
은퇴하면서 남현희는 “펜싱해온 시간을 돌이켜보니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99% 불리해도 잘 보면 1% 유리한 구석이 보인다. 그걸 그냥 넘기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약자는 강자를 이겨보려고 별별 궁리와 시도를 다하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져 온 관습을 살짝 비틀고, 작은 장점도 극대화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국내 복귀한 여자 배구 수퍼스타 김연경이 학창 시절 키가 작아 늘 벤치 신세였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았다. 내가 가진 조건으로도 꼭 필요한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그는 책에 썼다. 벤치에 앉아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공이 오는 지점을 예측하는 눈썰미를 키웠다. 감각을 익히려고 공을 끼고 밥 먹었고, 잘 때도 끌어안고 잤다. 단신 선수가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역할은 수비라고 결론 내리고, 혼자서 수도 없이 벽에 공을 던져 받아내는 훈련을 했다.
고2 때부터 기적처럼 키가 크면서 ‘수비 뛰어난 공격수’로 단숨에 빛을 발했지만, 그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고자 노력해오지 않았다면, 내게 주어진 기회를 어쩌다 찾아온 운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장점이라도 무게중심을 두고 키워나가면 단점을 돌파할 수 있다. 그것을 완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다윗과 골리앗’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우리가 강점과 약점에 대해 오해할 때가 많다고 설명한다. “약자라는 입장은 종종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주고, 약자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며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약점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을 간절하게 하고, 기꺼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게 하며, 전에 없던 독창적인 방식을 어떻게든 찾아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다윗들을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