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가 1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숭모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구미 지역 정치권과 시민 단체 등에서 “1000억원 사업비가 과다하다”는 등 반대하고 나서면서 순조롭게 사업이 진척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미시는 지난 1월 3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고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는 추모객들에게 품격 있는 추모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숭모관 건립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박정희 숭모관’ 건립은 현 김장호 구미시장의 공약이었다.
구미시가 숭모관 건립에 나선 것은 박 전 대통령 생가와 붙어 있는 추모관이 너무 비좁다는 이유에서다. 구미시 관계자는 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존 당시 접견실 용도로 만들었는데 55㎡(약 17평)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진입로가 좁고 경사가 있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제와 같은 행사 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오면 사고 위험성도 높아 새로운 숭모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숭모관 건립 예정지는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와 400여m 떨어진 곳이다. 상모동엔 생가 외에 박 전 대통령 역사자료관, 박 전 대통령 민족중흥관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시설들이 몰려 있다. 인근에 새마을운동 테마공원도 있다. 생가 등의 방문객은 연간 20만명에 이른다.
구미시는 숭모관에 추모관을 비롯해 유품전시관, 교육연수시설, 기념시설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숭모관 주변에는 광장과 둘레길 등을 만들어 방문객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구미시는 숭모관을 건립하게 되면 생가와 생가 일대에 조성돼 있는 시설과 연계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미시가 추정하고 있는 숭모관 건립 사업비는 약 1000억원 규모다.
구미시는 숭모관 건립을 위해 우선 각계각층 전문가를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또 7월까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하고, 숭모관의 규모와 형식 등 건립 방향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이후 건립 실시설계용역을 진행하는 등 관련 절차를 밟아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사업비 마련을 위해 국비와 도비 등을 신청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성금 모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시민 단체 ‘박정희와 대한민국’ 김종배 사무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오늘날 대한민국 근대화를 다진 역사적 인물이므로 숭모관 건립은 꼭 필요하다”며 “숭모관을 건립하려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명품 숭모관으로 건립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숭모관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은 논평을 내고 “구미시는 2020년 부채가 2098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해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최악”이라며 “이미 추모관과 새마을테마공원, 역사자료관, 민족중흥관 등 현재까지 박정희 기념 사업에 들어간 돈만 13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1000억원이라는 혈세를 들여 유사한 숭모관을 짓는 데 시민들이 의아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스비, 기름 값, 전기료 등으로 힘들어하는 구미 시민들의 민생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 단체도 반대하고 있다. 구미참여연대는 “1000억원의 예산을 전직 대통령 숭모 사업에 쓰기보다 시민이 원하는 정책에 써야 한다”고 했다.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은 “민간 차원 추진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구미시가 나서 숭모관을 건립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며 “재정 여건이 열악한 구미시 사정상 숭모관 건립을 강행할 경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질 수 있으므로 지금이라도 숭모관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미시는 “일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 이미 1300억원이 투입됐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아니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에 907억원이 사용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조만간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숭모관 건립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사업비와 숭모관 규모 등도 앞으로 논의를 통해 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