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미국이 유럽연합(EU)에서 BMW를 수입할 때 매기는 관세는 2.5%. EU가 미국서 포드 자동차를 수입할 때 부과하는 관세는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조만간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에 관세를 높게 매겨온 국가를 상대로 차례차례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EU를 비롯해 대만, 베트남, 태국 등이 그 대상으로 지목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무역 상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90여 년 전 대공황 시기 보호무역 강화에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던 무역·통상 원칙인 상호 관세를 취지와 정반대인 보호무역을 위한 관세율 인상에 활용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은 대공황 시기인 1930년 최고 4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했다가 각국의 보복관세로 대공황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겪었다”며 “당시 보호무역에 대한 반성이 커졌고, 관세를 서로 낮추는 상호 관세가 등장했다”고 했다. 세계 각국의 상품을 빨아들이는 미국이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상대국과 같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면, 경제 기반이 취약한 신흥국들은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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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통상 개념도 마음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11일이나 12일에 상호 관세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상호 관세 부과가 효력을 갖는 시점에 대해서는 “거의 즉시”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는 데 우리가 아무것도 부과하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모든 국가가 상호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하게 부과 방식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기존 국제 통상 질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상호 관세 원칙은 각각 10%와 50%인 관세율을 5%와 25%로 절반씩 낮추며 관세 격차를 줄이는 걸 의미한다면, 트럼프식 상호 관세는 미국의 적자 개선이라는 목적을 바탕에 깔고 상대국과 같은 50%로 관세율을 높이는 걸 뜻한다.

이런 방식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지지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이 상대국 수준에 맞춰 관세율을 높이는 경우가, 관세율을 함께 낮출 때보다 미국의 무역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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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어떻게?

우리는 미국과 FTA를 맺고 있어 거래 품목의 98%에 서로 관세를 붙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번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한미 무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일단 우리나라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상호 관세 부과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조수정 고려대 교수는 “FTA로 관세가 없는 우리나라는 취지대로면 FTA 미체결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가 556억달러(약 80조원)를 웃도는 현실에서 미국은 ‘상호 관세’ 카드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대한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에서 각종 비관세 장벽 피해도 보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식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비관세 장벽으로 보는 손해까지 거론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엄청나게 증액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지 않는다면 한미 FTA도 폐기를 비롯해 여러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며 “무기 및 에너지 수입을 늘려 현재 대미 흑자 규모를 200억~300억달러대로 줄이는 방안을 정교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 관세 (reciprocal tariffs)

일반적으로는 자유무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상대국과 비례해 관세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등장한 개념으로, 관세를 서로 낮추고 무역 장벽을 완화하면서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대국에도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관세 장벽을 높이는 데 이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