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전부터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를 공약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단결’을 외쳤던 바이든 대통령의 이상(理想)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인권 침해 등을 비판하며 “민주주의와 독재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해 5월 말 메모리얼데이(현충일) 연설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현 시대를 “전 세계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 ‘바이든 독트린’의 핵심인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8일 오전(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세계 60여 국가와 영국, 일본 등과 유럽연합(EU)이 참석하는 장관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미국의 주도하에 참여 국가들은 “인터넷이 민주적 원칙과 인권, 근본적 자유를 강화하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의 ‘인터넷의 미래 선언’을 함께 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인류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데 쓰이지 않고 계속해서 ‘자유’ ‘민주’ ‘인권’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된 정책을 해나가자는 다짐이었다.

이날 선언문에 특정 국가 이름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을 포함한 독재국가,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것은 분명했다. 선언문 초반부에는 “인터넷에 대한 접근성이 일부 독재국가에 의해 제한되고 온라인 플랫폼과 디지털 도구들은 점점 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른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부정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위 정보(disinformation) 유포와 랜섬웨어 같은 사이버 범죄를 포함해 국가가 후원하거나 용인한 악의적 행위가 늘고 있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날 회의에는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뉴질랜드, 대만 등 미국의 동맹·우방이 대부분 참석했지만, 한국은 참가국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과 (참가 여부를) 계속 협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날 미국 국무부는 의회와 협력해 ‘유럽 민주주의 회복성 계획’(EDRI)에 3200만달러(약 407억원)를 투입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EDRI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째가 되던 지난달 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도둑정치(kleptocracy)에 대응”하고 “유럽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며 제시한 계획이다. 국무부가 그에 따른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 이날 발표한 것인데, 허위 정보 유포에 강력 대응하며 친민주주의 조직을 지원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적 원칙과 인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주도한 ‘인터넷의 미래 선언’과 결이 같다. ①동맹과 우방국을 집결시켜 ②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 외교의 일관된 흐름이다. 지난 26일(현지 시각)에는 독일 람스타인 공군기지에서 ‘우크라이나 방어 협의체’ 국방장관회의를 개최했다. 나토 국가들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등 비(非)나토 우방국 14국도 초청했다. 40국이 모인 자리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든 우리의 안보 지원은 ‘자유의 최전선’으로 간다”며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무기고를 강화하는 일을 돕는 것이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무력에 의한 영토 변경, 경제적 강압, 허위 정보 유포”를 “강대국의 악의적 행동”으로 꼽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계 주민을 억압했다는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유럽 국가들에 대한 에너지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협박한 것은 여기에 모두 해당하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 위기 시대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지층의 압박도 받고 있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한 최근의 사태에 총력을 다해 맞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30억달러(약 3조8100억원) 이상의 군사 원조를 했고, 추가 경제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국영회사 가스프롬이 27일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자, 미국 에너지부는 즉각 미국 기업들의 천연가스 수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