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법원은 ‘재판 지연’ 통계를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모든 판사에게 공개합니다. 어느 판사가 일을 적게 하는지 다른 판사들이 다 알 수 있죠. 주 대법원장이 법원장 회의에서 ‘이 법원은 재판 지연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뉴욕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인 한국계 대니 전(60·전경배) 판사는 18일 본지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재판이 늦어져 국민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 판사는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검사(1987년), 뉴욕시 판사(1999년)를 거쳐 뉴욕주 판사(2003년)가 됐다. 세 자리 모두 ‘한국계 최초’였다. 전 판사는 지난달 경희대 국제교류센터에서 미국 형사사법제도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전 판사와의 인터뷰는 최근 5년간 국내 법원에서 1심 판결까지 2년 넘게 걸리는 ‘장기 미제’ 사건이 형사 재판은 2배, 민사 재판은 3배로 각각 늘었다는 본지 보도(7월 28일 자 A 1면)를 계기로 이뤄졌다.
전 판사는 뉴욕주 법원은 형사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사건 처리 기준(Standards and Goals)’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소 후 6~9개월, 늦어도 1년 안에 배심 재판을 열게 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지체 사건’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판사는 “브루클린 지방법원에서는 매주 재판 지연 통계를 만들어 소속 판사 35명 전원에게 배포한다”며 “내가 판사로 열심히 재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동료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뉴욕주 판사가 1000명이 넘는데 이들 전원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지체 사건 통계가 전달된다고 한다.
전 판사는 “형사 재판을 제때 하지 않으면 구속된 피고인에게 큰 부담이 되고 피해자 고통도 커진다”고 했다. 그는 또 “뉴욕주 대법원장이 매주 지역 내 법원장 회의를 하는데 지체 사건이 많은 법원장에게는 ‘그 법원은 왜 그렇게 지체되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면서 “판결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식의 지시가 아니기 때문에 재판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재판 지연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 판사에게 ‘한국에서는 전국 지방법원 민사 합의부 배석 판사들이 일주일에 판결문 3건만 쓰겠다고 암묵적으로 합의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하자,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뉴욕주 법원에서도 민사 재판은 지연이 심각하다고 한다. 소장을 내고 1년이 돼도 재판이 시작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 판사는 “과거 한국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등을 운영했던 것처럼 재판을 신속하게 하는 판사를 우대하는 제도가 있으면 (판사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한 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 제도를 도입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장에게 잘 보이거나 후배 판사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법원장도 될 수 있는데 어떤 판사가 배석 판사들에게 욕먹어가며 열심히 재판하려고 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