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두 명의 소프라노가 있는 것 같다니까요.”
프랑스 정상급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55)의 첫 내한 회견이 열린 4일 서울 더플라자호텔. 프티봉이 특유의 빨간 머리와 자유분방한 캐주얼 차림으로 입장하자 동료 지휘자인 엘로이즈 가이야르(53)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파리 음악원 재학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30년 지기(知己)’다. 6·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두 차례 열리는 한화클래식 공연에서도 이들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들로 호흡을 맞춘다.
가이야르는 프티봉에 대해 “바로크 음악은 희극과 비극적 성격을 모두 드러내야 하고, 음역(音域) 역시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데 이런 대조적 성격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나의 ‘뮤즈(muse)’”라고 격찬했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의 여신에서 유래한 말로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를 뜻한다. “높고 화려한 콜로라투라 음성을 지닌 프티봉이 가벼운 희극부터 강렬한 비극까지 다채로운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뛰어난 가수인 동시에 뛰어난 배우이기 때문”(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런 평가처럼 프티봉은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광범위한 작품들에 도전하는 성악가로 정평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에 출연할 적에는 살구빛 속옷 차림으로 뭇 남성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치명적 여인인 룰루 역을 열연해서 세계 음악계에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낳았다. 프티봉은 “평생 몇몇 한정된 작품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로는 악마적인 룰루처럼 다양한 작품을 탐구하며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프티봉의 프로 데뷔 무대는 26세 때로 비교적 늦은 편이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고음악 거장 윌리엄 크리스티(80)를 만나면서 바로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프티봉은 “크리스티는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의 고음악 자료들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찾아내고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 바로크 음악의 ‘인디애나 존스’와도 같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바로크 음악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첫 내한 무대에서도 가이야르가 이끄는 프랑스 고음악 전문 악단인 ‘아마릴리스 앙상블’과 프랑스 바로크 곡들을 선보인다. 사랑과 배반, 복수 같은 주제들을 다룬 프랑스 바로크 작품들을 하나의 극 음악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가이야르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복수심에 불타는 그리스 신화의 여인 메데이아처럼 프티봉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석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