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협치 모델로 제시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트 애틀리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앙숙 관계였지만, 전시(戰時) 위기 상황에선 초당적으로 협력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영국 총리에 취임한 보수당의 처칠은 영국이 존망의 갈림길에 서자 노동당과 연립 내각을 구성했다. 당시 보수당과 노동당은 산업 국유화 정책 등을 놓고 대립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동당 당수였던 애틀리는 1945년까지 이어진 전시 내각에서 부총리 등을 지내며 처칠을 보좌했다. 애틀리는 나치 독일과의 협상을 주장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당 장관들을 질책하면서 처칠에게 힘을 싣기도 했다. 애틀리는 “처칠이 없었으면 영국이 패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7월 실시된 영국 총선에선 노동당이 압승하면서 애틀리가 수상으로 취임하게 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인기가 상당했지만, 사회 복지 정책 등을 공약으로 제시한 애틀리의 승리였다. 애틀리는 1951년까지 6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1951년 총선에선 보수당이 다시 승리하면서 처칠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존경하는 인물로 처칠을 꼽으면서 “나치와 타협하자는 정치권 요구도 많았지만, 국민들을 설득하고 자기의 확고한 비전을 갖고 어려움을 돌파해나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