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들이 음악에 흥미를 붙이고 시야를 넓히는데 ‘추천 리스트’가 큰 도움이 된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저명한 평론가와 음반 산업 관계자가 꼽은 세기의 명반·명곡 이름을 달달 외웠다. 남들보다 수만 시간을 투자한 대가들의 보물창고를 엿보며 홀로 작은 수련을 거쳐온 셈이다.

영원할 것 같던 이 리스트에 최근 새 바람이 일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잡지 ‘롤링스톤’과 힙스터의 성지 격인 비평지 ‘피치포크’가 변신을 꾀했다. 차트 대부분을 차지하던 백인 록의 비중을 낮추고 그간 소외 받았던 흑인 음악과 여성 뮤지션 비중을 대폭 늘렸다.

최근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애플 뮤직’이 발표한 ‘역대 최고의 음반 100선’도 화제가 됐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최신작인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빌리 아일리시 같은 팝스타들을 과감히 상위권에 올리고 결코 순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고전들을 과감히 생략했다. 당장 팬들의 반발이 일었다. 마땅히 뽑힐 작품이 빠진 건 차치하고 몇몇 순위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 물론 세상의 모두를 만족시킬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애플이 내민 명단은 기준이 워낙 모호해 설득력이 약하고 책임감마저 부족해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리스트들이 변화를 꾀하는 건 전통적인 음악 추천 방식이 뒤안길에 접어든 결과로 보인다. 평론의 무게는 줄고 큐레이팅으로 음악을 추천받는 시대다. 사람들 눈길을 한 번이라도 끌려면 마케팅 측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롤링 스톤만 해도 올해 2월 ‘역사상 최고 명곡’ 리스트에서 280위였던 비틀스의 ‘Penny Lane’을 빼고 대신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넣었다. 최초의 아이돌이 있던 자리를 오늘날의 아이돌에게 위임한 일종의 퍼포먼스 같았다.

국내에선 얼마 전 20주년을 맞은 ‘EBS 스페이스 공감’이 열한 명의 선정위원을 모아 음악 추천 명단을 재정비했다. 그 소개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순위는 없다. 음악은 경쟁이 아니니까.” 몇 번이나 맞장구를 쳤다. 많은 이들이 우열을 가리는 용도가 아닌, 음악의 흥미를 돋구는 길잡이로서 리스트를 영리하게 소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