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력에서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90) 전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보다 화려한 일본인은 드물다. ICJ 소장 이외에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하버드 로스쿨 교수 등을 지냈다. 국제 재판, 일본 외무 관료, 법학 분야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다. 그는 일본 국왕의 장인으로도 유명하다. 1993년 일본 왕실로 출가한 장녀 마사코(雅子)가 2019년 남편 나루히토(德仁)의 국왕 즉위와 함께 일본 국왕비가 됐다.
일생 엘리트 외교관이던 오와다 전 소장의 활동 무대는 미국·유럽·러시아 등 강대국과 유엔이었다. 한국에선 근무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를 빼놓고 한일 교류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정상회담을 맞춰 한일 민간 대화를 위한 한일포럼이 발족했다. 오코노기 마사오 현 일본 측 의장(게이오대 명예교수)은 “한일 지적 교류의 첫걸음이었다”고 했다. 오와다 전 소장은 열성적으로 한일 지식인들을 규합해 포럼 발족을 주도하고 일본 측 초대 회장을 10년 동안 지냈다.
이 포럼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센터 주최로 한일 양국에서 번갈아 매년 열렸다. 코로나 위기 3년 동안은 화상회의로 포럼을 유지했다. 30주년을 맞은 올해 대면 회의를 재개하면서 오와다 전 소장이 25일 도쿄에서 7회 한일(일한)포럼상을 받았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수상식에 참석해 “현역이 볼 때 그는 신과 같은 존재”라며 “선생의 뜻을 이어 일한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의 박진 장관과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유명환 현 한국 측 의장(전 외교부 장관)은 그에 대해 “국제법 전문가이지만 한일 관계를 법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풀고자 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오와다 전 소장은 말했다. “외무성 사무차관을 할 때 위안부 문제가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일한 청구권협정을 들어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인가. 법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인간적으로도 끝난 것인가. 정부는 위기 관리의 기능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협력하지 않으면 평화롭고 영속 가능한 관계에 도달할 수 없다. 일한 외교를 하면서 그것을 알았다.” 장녀의 왕실 출가로 외무성을 그만둔 그는 한일 관계 발전에 힘을 쏟았다. 포럼 발족 이듬해인 1994년 유엔 대사로 임명됐지만 포럼 의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포럼 참석을 허락해 준다는 정부의 약속을 받고 유엔 대사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1995년 포럼은 한일 정부에 공동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이 단독 개최 방침을 굽히지 않을 때였다.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일본이 유리한 국면에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멘털에 안 좋으니까. 우리가 주장한 공동 개최가 실현됐다. 그런데 한국이 준결승에 오르자 이번엔 ‘공동 개최이니까 일본도 한국을 응원하자’는 전화가 왔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함께 포럼이 제안한 비자 면제도 이듬해 실현됐다.
그는 지금의 한일 관계를 “blessing in disguise”라고 표현했다.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축복이었다는 뜻이다. “한일 관계가 나쁘다고 하지만 (직전 대면 회의가 있었던) 3년 전보다 훨씬 낙관적이다. 현실을 분석만 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내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행동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