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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7일 독일 바이에른주 알프스의 엘마우성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로고./로이터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G7(주요 7국) 주한대사를 초청, 만찬 모임을 가졌을 때다. 서울에 주재하는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 대사, 콜린 크룩스 영국 대사 등 G7 대사 7명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날 만찬은 한국이 이달 중순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초청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련됐다.

하지만 박 장관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동맹 격상 외에 역량을 기울이는 분야가 한국이 G7에 가입, G8 국가가 되는 것이다. G7 국가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호혜적인 관계로 만들어 G8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 박 장관의 구상이다. 이날 한일 관계 개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의 대화로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 장관이 일어나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G7에 한국을 더하면 무엇이 됩니까.” 그러자 G7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의 대사가 “G8″이라고 외치며 건배에 응했다. 박 장관은 며칠 뒤 프랑스·독일·캐나다 외교장관이 일본 나가노에서 열리는 G7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시아로 올 때도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 회담을 가졌다. 3일 기자와 만난 박 장관은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진국으로 이미 세계 8강 수준에 와 있다”며 “한국은 G8 국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다.

박진 장관 “한국 G7 가입 자격 충분”

박 장관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8강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전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고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인 ‘3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 7국에 불과하다. 30-50 클럽은 캐나다를 제외한 G7국가와 놀랄 정도로 일치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교역액은 1조4150억달러로 G7 국가 중에서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다음으로 5위다. 4위인 프랑스(1조4370억달러)와도 큰 차이가 없다. 올 초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뉴스&월드 리포트’는 2022년 세계 강대국 순위에서 한국이 세계 6위라고 발표했다. 더욱이 한국은 K팝, K영화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의 ‘G8 국가’ 가능성이 제시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G7을 확장하자며 호주, 인도, 대한민국을 G7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자 사실상 G8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국제 정세의 격변은 한국의 G8 진출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심화에도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역할도 못 하고 있다. 기존 국제질서를 무시하는 중국의 폭주, 룰라 대통령의 재등장에 따른 브라질의 좌회전 등으로 주요 20국 회의(G20)는 동력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7의 가장 큰 주주(株主)인 미국은 한국의 G7 가입 추진을 반기는 분위기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최근 70년 된 한미 동맹이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미국이 앞장서서 G7에 한국을 불러들여서 G8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G7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의 긴밀한 동맹국인데, 한국은 G7이 될 자격이 있다”고 했다.

2022년 6월 독일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모습./로이터

자민당 우파, 한국 G8에 반대

EU를 탈퇴, 국력이 쇠퇴하고 있는 영국은 관계가 소홀해진 유럽 국가보다는 아시아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런 배경 아래 영국은 한국의 G7 가입을 지지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는 관측이 외교부 안팎에서 나온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도 한국이 G7 가입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북한 문제 등에서 늘 한국과 입장을 함께해 온 캐나다도 외교적으로 설득 가능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국 G8 국가화의 관건은 일본이다. 일본은 G7에서 유일한 아시아 회원국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고 싶어한다. 특히 여전히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분위기가 자민당 우파 의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걸림돌이다. 전직 주일대사는 “일본의 위상이 약화하는 가운데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게 ‘아시아 유일의 G7 회원국’ 타이틀”이라며 “자민당 우파가 과연 그런 독보적인 지위를 한국과 나누고 싶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G8 문제와 관련, 한일 양자관계에서 일본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이 나설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4·26 한미 정상회담 당시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외교적 결단” ”정치적 용기”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누구보다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설득하면 청신호가 들어올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G7 가입을 지지하는 대가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약속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G7은 유엔처럼 사무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 가입에 특별한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지지하고, 일본이 반대하지 않으면 G8 국가가 될 가능성이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평가다.

2021년 6월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초대 받은 문재인(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 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두번째 줄 왼쪽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 세번째 줄 왼쪽부터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뉴시스

美日과 관계 좋은 호주와 연대해 G9 추진도 방법

1970년대 출범한 G7은 1998년 러시아가 참여, G8로 15년 넘게 운영됐다. 그러다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으로 러시아의 자격이 정지됐다. 이때부터 G7이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선진국 클럽’ 이미지가 강해졌다. G7에 러시아가 가입했다가 사실상 탈퇴한 역사가 있기에 G8나 그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한국이 G7에 단독으로 가입하려 할 경우, 일본의 반대와 G7 반열의 다른 나라의 견제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유사한 지위의 국가와 연대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함께 G7에 가입할 국가 후보로는 호주가 거론된다.

호주는 민주주의가 성숙해 있고, 1인당 GDP가 6만5000달러의 선진국이다.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쿼드 참여 국가로, 일본도 호주와는 준(準)동맹 관계를 유지한다. 다만, 호주는 인구가 2600만명에 불과하고, 교역액이 7190억달러로 국가의 위상 및 경제 규모가 작은 것이 단점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한국 단독으로 G8가 되려고 할 경우 다른 나라의 반발이 클 수 있다”며 “아시아의 호주와 함께 들어가는 전략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G8 국가화는 매우 복잡한 함수를 풀어나가는 것과 비슷해 단기간에 이루려 하기보다는 한국의 역량을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오준 전 유엔 대사는 “G7 개편 논의는 유엔 안보리 확대 논의가 수십 년째 이뤄지고 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며 “당분간은 한국이 G7에 꾸준히 초대받아 세계 주요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G7과 국제사회가 한국의 역할과 능력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열린 G7정상회의 기념촬영 무대에 참가국 깃발들이 놓여 있다./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