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9일 의원총회에서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거취 문제, 김 위원장이 제시한 당 개혁안,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점 등을 두고 5시간 넘게 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친윤계 구(舊)주류 의원들은 김 위원장의 개혁안을 ‘자기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당내 개혁은 차기 지도부에 맡기고, 김 위원장은 6·3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했다. 반면 친한계를 비롯한 비윤계 의원들은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계 지도부 사퇴에 김 위원장이 동참할 이유가 없다면서 “차기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김 위원장이 당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전날 ‘9월 초 전당대회 개최’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후보 교체 파동 당무감사’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상향식 공천’ 등이 담긴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친윤계 의원들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김 위원장의 개혁안을 비판하면서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강승규 의원은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프레임에 비대위원장이 올라타 자기 정치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대선 패배 후 비상대책위원직에서 사퇴한 최보윤 의원도 김 위원장을 향해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는 태도로는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고 독재로 가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계와 비윤계는 김 위원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친한계 조경태 의원은 “김 위원장의 혁신안이 우리 당을 살리고 지방선거를 잘 대비할 수 있는 안”이라며 “새 지도부를 구성할 때까지 김 위원장 임기(6월 30일)를 연장해야 한다”고 했다. 비윤계 신성범 의원은 “계엄과 탄핵에 대해 오해를 풀고 가야 한다. 김 위원장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자기를 향한 친윤계의 사퇴 요구가 잇따르자, “내년 지방선거를 선출된 당대표와 비대위 중 어느 체제로 치를지와, 내가 제시한 당 개혁안에 대한 신임 여부에 대해 당원의 의견을 구하는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자기가 물러나더라도 친윤계가 다시 당 주도권을 쥐고 당 쇄신에 역행하지 않도록, 차기 지도 체제를 당원의 뜻에 따라 결정하자는 생각”이라며 “‘김용태 개혁안’에 대한 신임 투표는 사실상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들에게 묻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원총회에선 친윤계 다수가 전 당원 투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 임기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인데 그걸 전 당원 투표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많은 의원이 말했다”고 밝혔다. 전당대회 시점에 대해서는 8~9월 안에 개최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박 원내수석은 전했다.
국민의힘은 추후 의원총회를 다시 열고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10일 예정된 원외 당협위원장 간담회를 통해 개혁안 추진 동력을 얻겠다는 구상이다. 김 위원장 측은 “원외 당협위원장은 수도권·충청·호남 지역이 중심이기 때문에 영남 중심의 원내와 달리 개혁 성향이 강하다”며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날 5시간여 걸친 의원총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국민의힘에서는 “결국 16일 선출되는 신임 원내대표가 차기 지도 체제를 결정할 키를 쥘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 위원장이 30일까지인 자기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면 신임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신임 원내대표는 차기 당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 ‘당대표 권한대행’을 계속 겸할 수 있고,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을 임명할 수도 있다. 야권에서는 “여전히 당내 다수파가 친윤계이기 때문에 16일 선출되는 원내대표 역시 친윤계의 표심이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