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정규직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 설정 없이 무턱대고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한 것을 꼽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본사 직접 고용인지, 자회사 설립 후 고용도 포함하는지 등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비정규직 제로’ 구호만 앞세웠다는 것이다.

윤장혁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철폐! 불법파견 범죄자처벌!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폐기!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6.08. /뉴시스

‘비정규직’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비정규직 대신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worker)와 시간제 근로자(part-time worker) 정도를 정규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사정위원회가 2002년 7월 비정규직을 한시적(기간제)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 원청과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으로 원청에 파견돼 일하는 파견·용역 근로자, 일일 근로자, 특수 고용 근로자, 가정 내 근로자 등 비전형 근로자 대부분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규정했다. OECD 기준보다 훨씬 범위가 넓은 것이다.

정부와 학계는 노사정 합의 기준에 따라 비정규직 범위를 파악하고 있지만, 노동계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대표적으로 사내 하청업체 소속 정규직에 대해서도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A 자동차 업체와 도급 관계를 맺고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B의 정규직도 원청인 A의 일을 대신하는 파견 근로와 다를 바 없어 비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계가 비정규직 범위를 터무니없이 넓게 주장하면서 기업들이 광범위한 근로자를 착취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비정규직은 대체로 늘고 있지만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처우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로 옮겨 가는 게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전직 고용부 고위 관료는 “결국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범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실질적 처우 개선과 지속적 경력 관리 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