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체조의 ‘살아있는 전설’ 시몬 바일스(27·미국)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였다. 압도적 실력을 갖춘 최고 선수지만, 3년 전 도쿄 올림픽 기억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2016 리우 올림픽 4관왕에 오른 그는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체조 사상 최초로 6종목을 석권할 거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단체전 도마 연기를 펼친 뒤 돌연 기권했고, 평균대(동메달)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를 모두 포기했다. “위아래 구분이 안 되고, 어떻게 착지해야 하는지도 잊었다”며 심리적 중압감을 호소했다.
모든 우려를 털고 바일스는 파리에서 다시 최고 수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30일(현지 시각)엔 미국 여자 체조 단체전 우승(171.296점)을 이끌었다. 바일스는 앞서 예선 개인종합·도마·마루 1위에 올랐고, 이날 단체전 결선에서도 마루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여자 체조는 1996 애틀랜타, 2012 런던, 2016 리우에 이어 4번째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2위 이탈리아(165.494점), 3위 브라질(164.497점)을 큰 점수 차로 제쳤다. 미국 여자 체조는 2020 도쿄 올림픽 땐 바일스의 기권으로 단체전 은메달에 그쳤다.
선수 생명이 짧은 여자 체조 종목에서 바일스는 20대 후반 나이에도 여전히 탁월한 기량을 펼쳐 이날 자신의 통산 8번째 올림픽 메달이자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이번 올림픽 첫 메달이다. 역대 미국 여자 체조 선수 중 최고령 금메달을 따내며 최다 올림픽 메달(8개)을 수확했다. 바일스는 “오늘 아침에 차분하고 준비가 된 느낌이었다”며 “도마 경기를 마치고 나서 ‘휴, 최소한 플래시백(flashback·갑자기 너무 생생히 떠오르는 회상)은 없었네’ 생각하며 크게 안도했다”고 말했다. 극심한 심리적 혼란을 겪었던 도쿄 올림픽의 경험을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도쿄 올림픽 당시 바일스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에 많은 팬들이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그를 격려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이후 바일스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해 9월 동료들과 함께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전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실을 용기 있게 증언했다. 2022년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NFL(미 프로풋볼) 선수 조너선 오언스(29·시카고 베어스)와 결혼한 뒤 복귀했다.
바일스는 “도쿄 올림픽 이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체조를 하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나 자신을 믿는 게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모든 어려움을 통과하고 다시 최고 무대에 선 그는 폭발적인 파워와 스피드, 놀라운 탄력에 우아함까지 갖춘 연기를 선보인다. 바일스에겐 아직 파리에서 메달 기회가 4번 더 남아있다. 5일까지 이어지는 개인종합과 도마, 평균대, 마루 결선에서 더 많은 올림픽 메달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