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다가오는 게 겁이 나네요.”
지난 27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에서 만난 주부 김광선(40)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네 살 아들에게 사줄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러 온 참이었다. 김씨는 “물가가 치솟으면서 이번 어린이날에는 뭘 사야 할지 정말 고민”이라며 “장난감 값도 많이 올라 조카 3명 선물까지 사주려니 20만~25만원은 들 것 같다”고 했다. 고민 끝에 김씨는 조카들 선물은 기프티콘이나 편의점 상품권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어린이날·어버이날 등이 몰린 ‘가정의달’ 5월이 다가오며 김씨처럼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특히 4~5월 전후로 가족 단위 소비가 많은 제품이나 서비스 값이 잇따라 올라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원자재 값이 오른 데다 코로나로 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18일 거리 두기가 완전 해제되며 각종 모임이 늘어난 데다 각종 기념일로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5월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가격이 오르자 일부 기업들의 ‘꼼수 인상’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테마파크와 영화관은 가장 큰 대목 중 하나가 어린이날이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는 지난 1일부터 성인 자유이용권 가격을 6만2000원으로 종전보다 3000원 올렸다. 에버랜드도 지난 3월 연간 회원권 값을 최대 4만원 올렸고, 멀티플렉스 CJ CGV도 이달 4일부터 1인당 표 값을 최대 5000원 올렸다. 주말·공휴일 오후 성인 2명과 청소년 2명이 3D 영화를 예매했을 때 표 값만 5만8000원이다. 수원에서 네 살,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이예진(36)씨는 이런 점 때문에 어린이날 테마파크나 극장 대신 동네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이씨는 “가족 넷이 다 함께 입장하고, 식사도 해야 하는데 표 값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고 했다.
기념일에 인기인 주요 뷔페 가격도 잇따라 오르는 중이다. SK그룹의 워커힐 호텔 뷔페는 지난 1일부터 주말 점심·저녁 기준 1인당 13만1000원에서 14만3000원으로 올랐다. 4인 가족이 갈 경우 종전보다 5만원 가까이가 더 든다. 호텔 관계자는 “고객들에 충분히 설명했고, 특별히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걸로 안다”고 했다. 신세계그룹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의 뷔페 콘스탄스는 5월 1일부터 가격을 최대 22% 올린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치킨 값도 오른다. BBQ는 5월 2일부터 치킨 품목 메뉴를 2000원씩 인상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중 하나인 ‘BBQ 황금올리브’ 치킨은 1만8000원에서 2만원이 된다. 어버이날에 호텔 뷔페를 가볼까 고민했던 직장인 박모(29)씨는 “어버이날엔 그냥 평범한 중식당에 가고, 나중에 생신을 더 잘 챙겨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선물도 마찬가지다.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은 화장품의 경우 아모레퍼시픽이 지난 25일 헤라·설화수 등 9개 브랜드 8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10% 인상했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인 ‘설화수 윤조에센스’(120mL)가 16만원에서 17만원으로 올랐다. 장난감 가격도 오름세다. 롯데쇼핑에 입점해 있는 영실업, 아이큐박스 등 주요 완구 브랜드 제품은 올해 3월부터 5~10% 인상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원자재 값 상승으로 대부분의 상품 가격이 오른 상황”이라고 했다. 이날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에서 만난 완구점 사장들은 올 들어 장난감들이 최소 10%는 오른 것 같다고 했다. 한 완구점 사장 송동호(66)씨는 “그나마 우리는 백화점보다 30~50% 저렴하게 판매하는데도 장난감 가격이 계속 올라 손님이 끊길까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