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우리나라 부모 3명 중 2명은 자녀의 성공과 실패를 부모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초기 성인기의 부모·자녀 관계와 사회 계층적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9~34세 자녀가 있는 45~69세 16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66.9%가 ‘자녀의 성공과 실패에 부모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매우 동의한다’가 8.8%, ‘대체로 동의한다’는 58.1%였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3.1%였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고 자산이 많을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졌다. 대졸 이상 학력 부모 세대는 10명 중 7명 이상(73.6%)이 자녀의 성공과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고졸 이하는 64.6%였다. 자산 10억원 이상인 경우는 70%에 가까웠고, 자산 1억원 미만은 64.5%였다. 성별로는 남성이 68.5%, 여성이 65.5%였다. 연령대별로는 55~59세가 70.1%로 가장 높았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부모의 지원이 자녀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며 “부모 세대는 이런 인식에 기반해 자녀에게 더 지원하거나 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조사에 응한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결혼 준비까지는 자녀에게 자금과 주거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했고, 심지어 손자녀 돌보기를 자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년층 10명 중 6명 “경제적 자립 때까지 부모가 생계 지원해야”

“대학을 졸업한 아이가 직업을 구하고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는 부모가 계속 경제적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55세 여성 A씨)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자녀의 성공과 실패는 부모의 책임’이라는 국민 인식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은 우리나라가 취업과 결혼, 출산이 점점 늦어지는 ‘지각 사회’에 접어드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자녀의 대학 졸업과 취직, 독립이 늦어지자 여력이 있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이자 책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응답한 부모의 83.9%는 ‘자녀의 대학 학비를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결혼 비용 지원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70.1%, ‘주택 구입비 지원 의사가 있다’는 61.7%였다. ‘자녀가 취업할 때까지 생계비를 지원하겠다’는 응답도 62.9%였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한 계속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도 42.1%에 달했다. 고도성장기에 부동산 보유 등으로 자산을 키운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높아졌고, 과거에 비해 자녀가 줄어 집중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것도 경제적 지원 의사가 높게 나타난 요인으로 꼽힌다.

청년층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19~34세 청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68.4%는 ‘부모는 자녀의 대학 교육 비용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또 62.2%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부모가 생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일정한 나이나 학교 졸업 등 특정 시점이 아니라, 실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부양해야 한다는 사람이 다수인 것이다. 이 외에 결혼 비용과 주택 구입비도 부모가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각각 53.4%와 45.1%였다. 응답자의 46.3%는 ‘자녀가 취업해도 부모가 여력이 있는 한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부모와 동거 중인 회사원 B(30)씨는 “몇 년 뒤에 결혼해서 나갈 때에 대비해 부모님이 얼마큼 돈을 보태주는 등 저축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