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로 ‘안심소득’ 도입을 추진한다.
안심소득은 가구 소득에 따라 저소득층에 현금을 선별적으로 차등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장제도다. 가구 소득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같은 금액을 주는 ‘기본소득’과 달리,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기본소득’ 대신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기초생활보장제도)를 대체할 대안으로 ‘안심소득’을 제안했다. 이어 이듬해 7월부터 저소득층 16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19일 ‘안심소득 정합성 연구 TF’를 출범시키고, 그동안 실험해 온 안심소득 제도를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양성일 고려대 보건대학원 특임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TF는 안심소득 제도가 현행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기초생활수급자 제도, 기초연금 등 다른 제도와 충돌 여부, 중복 지원 여부, 적정 지원액 수준 등을 파악해 구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올 연말 그 결과를 발표하고 안심소득 제도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안심소득은 가구 소득이 중위 소득(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속한 소득)의 85% 이하면서, 재산이 3억26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 중위 소득의 85%를 ‘기준 소득’으로 잡고, 기준 소득과 실제 가구 소득 차액의 절반을 현금으로 지원한다. 가구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받는 것이다. 기준 소득은 2024년 기준으로 1인 가구는 월 189만4178원, 2인 가구는 313만218원, 3인 가구는 400만7458원, 4인 가구는 487만426원이다. 예를 들어, 소득이 하나도 없는 1인 가구는 매달 기준 소득 189만4178원의 절반인 94만7090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생계·주거급여, 기초연금, 청년수당 등 기존 현금성 급여와 중복해서 받을 수는 없다. 생계급여를 받는다면 생계급여를 뺀 차액을 받을 수 있다.
일을 해서 소득이 증가해도 가구 소득이 기준 소득 이하이면 계속 현금 지원을 받는다. 기준 소득을 넘으면 현금 지원이 일시 중단됐다가, 기준 소득 이하로 줄면 자동으로 다시 지원한다.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는 일을 해서 일정 기준 이상 소득이 생기면 수급 자격을 잃고, 자격이 생기면 다시 신청해서 수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는 집이나 자동차, 은행 예금 등도 소득으로 봐 벌이가 아예 없어도 전셋집이나 중고차 등이 있으면 지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안심소득은 근로 소득만을 가구 소득으로 보기 때문에 기준 자체가 낮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의 복지 사각지대를 안심소득이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22년 7월 시작한 시범 사업에서 효과를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2023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을 열어 시범 사업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와 달리 저소득층에서 벗어나는 비율이 높았고,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꺾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조사 대상 477가구의 21.8%인 104가구에서 근로 소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근로 소득이 월 100만원 이상 증가한 가구가 49가구, 월 50만원 이상 증가한 가구가 65가구였다. 477가구 가운데 23가구(4.8%)는 1년여 만에 가구 소득이 중위 소득의 85% 이상으로 늘어나 저소득층에서 벗어났다.
당시 포럼에 참석한 미국 MIT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한국처럼 지원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행정 역량을 갖춘 국가는 (저소득층에 대해)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뒤플로 교수는 빈곤 퇴치 연구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서울시는 TF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서울시 사회보장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안심소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오 시장은 “오늘은 대한민국 복지 표준을 제시하고, 안심소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라며 “어려운 분들께 힘이 되는 제도로 정착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다만 재정 부담이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위 소득 32% 이하 가구에 생계급여 등을 지원하는 현행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보다 예산이 더 들 수밖에 없다”며 “재원 마련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