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12년째 닭강정을 팔고 있는 이모(53)씨는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언제 끝나는지가 관심사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안타까운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본인의 일이 될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그가 가게에서 사용하는 재료 값이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닭강정을 만들며 1주일에 18L짜리 식용유를 17~18통 사용하는데, 전쟁 전만 해도 1통당 2만4000원 하던 가격이 지금은 4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음식을 따뜻하게 보관하는 용도로 쓰는 알루미늄 쿠킹 포일과 닭강정을 만들 때 쓰는 밀가루 가격도 올랐다. 결국 이씨는 지난달 10일 메뉴 가격을 1000~2000원씩 올렸다. 이씨는 “기름 값만 따져도 1 주에 30만원을 더 쓰게 된 상황”이라며 “힘들고 길었던 코로나 시국을 벗어나나 했는데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니 허망하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내 전통시장 자영업자들에게까지 충격을 주고 있다. 전쟁 여파로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서 주로 생산되던 원자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관련 제품 가격이 잇따라 치솟고 있어서다. 특히 이 중 식용유·쿠킹 포일·밀가루 등의 가격이 최근 가파르게 치솟은 게 전통시장에서 빈대떡이나 닭강정 등을 팔던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각종 반죽을 기름에 튀겨 쿠킹 포일로 포장하는 형태로 손님들에게 파는 일이 많아서다.
러시아는 알루미늄과 밀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으로 세계 각국이 러시아와의 교역을 중단하면서 런던금속거래소의 국제 알루미늄 가격은 작년 4월 2324달러(약 282만원)에서 지난달 3538달러(약 430만원)로 약 52% 올랐다. 밀 역시 같은 기간 1t당 가격이 68% 치솟았다.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도 식용유의 하나인 해바라기유에 쓰이는 해바라기씨 생산량이 세계 1위다. 또 다른 식용유인 카놀라유 원료 ‘유채’도 생산 규모가 세계 7위이지만, 둘 다 전쟁 여파로 글로벌 시장에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국제시장에서 전반적인 식용유 가격이 전년 대비 30% 안팎 오른 상태다. 반면 각 원자재는 대부분 한국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라,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4~5일 본지가 만난 서울 곳곳의 전통시장 상인들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뭘 생산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날벼락을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망원시장에서 크로켓(고로케)을 파는 김모(68)씨는 일주일에 식용유를 360L쯤 쓴다. 한 번에 18L들이 식용유를 20통씩 시키는데, 지난달에는 10통밖에 사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김씨는 “값이 비싸졌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어려워지니 코로나 한창때보다 장사하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용산구 용문시장에서 전을 파는 박모(70)씨는 “기름, 밀가루 등 전에 들어가는 모든 식자재 가격이 다 올랐다”고 했다. 전쟁 전과 비교해 18L짜리 식용유는 5만원에서 5만7000원이, 밀가루 2.5kg는 3000원에서 3300원이 됐다. 박씨는 “전통시장이라 손님이 적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지도 못해 오른 식자재 가격을 그대로 부담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재료비 인상분을 음식 값에 반영할지 고민하는 상인들도 많다.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팔고 있는 이모(44)씨는 “작년 말에도 물가가 올라 빈대떡 가격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렸는데, 재료 값이 오른 만큼 또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국제 유통망에 차질이 생겨 물가가 올랐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것”이라며 “정부가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