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폐기될 위기에 몰렸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특별법(고준위법)’의 여야(與野) 합의 처리 가능성이 열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차원에서 여야가 한 발씩 물러섰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이 법안이 올라가기만 하면 가결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불발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해병대원 특검법’ 공세에 맞서는 차원에서 모든 상임위원회 소집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준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산자위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고준위법은 원전을 가동할 때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할 영구 처분장과 중간 저장 시설 등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국내 원전들은 원전 내 수조에 폐기물을 임시 저장하는데, 2030년 전남 영광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수조가 가득 찬다. 이대로 가면 2030년 이후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해 둘 곳이 없어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간 여야는 폐기물 저장 용량을 두고 맞섰다. 정부·여당은 원전 가동 연한 연장을 감안해 저장 용량을 정하자고 했지만, 탈(脫)원전을 주장하는 민주당은 원전의 최초 가동 연한까지 발생하는 폐기물만 저장할 수 있도록 용량을 제한하자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야당이 요구한 저장 용량 제한을 받아들였고, 야당도 중간 저장 시설 건설에 동의하는 등 한 발씩 물러섰다.
그런데 민주당의 해병대원 특검법 강행 처리에 반발한 국민의힘이 이달 들어 모든 상임위 개최를 거부하면서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민의힘이 상임위 보이콧 방침을 풀지 않으면 회의 소집이 불투명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 수석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28일 고준위법만 통과시키겠다면 협의 가능성이 완전히 막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결 국면을 방어하느라 민생 법안은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받는 진퇴양난에 놓였다”고 했다.
고준위법 외에도 육아휴직 기간을 최장 3년까지 늘리는 ‘모성보호 3법’, 대형 마트 주말 의무 휴업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AI(인공지능) 산업 육성을 골자로 하는 ‘AI 기본법’, 반도체 기업에 주는 세액공제 혜택을 연장하는 ‘K칩스법’ 등도 현재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