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큰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부인이시군요.”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해리엇 비처 스토에게 건넨 인사말이다. 그녀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의 잔혹함을 제대로 일깨웠다. 이는 여느 논문이나 연설로도 하지 못한 엄청난 성과였다. 노예 문제를 놓고 벌어진 남북전쟁의 원인(?)이 그녀라는 링컨의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결국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다. 변화를 꿈꾸는 자들이 사람의 감정을 흔들려 애쓰는 이유다. 하지만 흥분한 마음은 비극과 재앙을 낳기도 한다. 한 세기를 어둡게 만든 히틀러의 선동이 그렇다. 세상이 올곧게 되려면 혐오와 증오에 휘둘리는 대신 사회에 정의롭고도 따뜻한 감성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이 필요할까.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애국심’을 강조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이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쓴다. 나아가 사랑하는 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시민이 되려 노력한다. 또한, 국가가 자신의 자부심이 되도록 좋은 사회를 만들려 애를 쓴다. ‘훌륭한 나라’와 ‘좋은 시민’이 서로를 이끄는 선순환 구도인 셈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시민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그럼 애국심은 어디서 나올까.
누스바움은 애국심의 핵심으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건국 영웅들과 온갖 어려움을 함께 겪어낸 역사’ 등을 꼽는다. 국가 정체성을 품은 예술 작품과 기념물은 이 모두를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나라마다 순국선열과 역사를 기리는 시설을 두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매우 드문 사례다.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만한 나라에 살고 있다. 곧 현충일이다. 시간을 내어 현충원, 4·19 국립묘지 같은 국가 추모시설을 둘러보면 어떨까? 갈등과 대립이 심한 시대일수록, 훌륭한 나라와 좋은 시민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일은 중요하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