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종이학 접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 선생님은 교탁에서 종이학 접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셨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곧잘 따라 했다. 교실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종이학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오직 나만 선생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색종이가 동그랗게 부풀어 종이학이 되어갈 때, 내 색종이는 그저 납작하게 구겨져 있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리의 종이학도 접지 못한 나를 본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삐뚤면 손재주가 없어.”

마음이 삐뚤면 손재주가 없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나를 들킨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정말 손재주가 없었다. 그림도 잘 그리지 못했고 쿠키도 잘 만들지 못했고 찰흙도 잘 빚지 못했다. 삐뚤어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 매 순간 노력했는데, 만들기 시간만 되면 노력이 무용해졌다. 내가 만든 것들은 전부 나와 닮아 있었다. 못나고 투박한 내가 예쁘고 유려한 것을 만들 수는 없었다.

시 쓰기라고 다를까. 10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느리고 손재주가 없으며 마음은 삐뚤다. 그래서인지 내 시는―정확히는 내 시의 화자는― 어릴 적 만들었던 종이학과 쿠키와 찰흙처럼 못나고 투박하다.

그럼에도 계속 시를 쓸 수 있었던 건 시는 못날수록 아름다워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못난 구석을 숨기지 않는 것이 곧 시인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시를 쓸 때만큼은 못난 내가 싫지 않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못난 내가 필요해진다.

나는 그날 내가 완전히 구겨버렸던 색종이를 기억한다. 조그맣고 뾰족하게 구겨진 색종이를 손 안에 쥐고 슬픔에 잠겼던 일. 예쁘고 유려한 아이들 사이에서 못난 생각만 잔뜩 했던 일. 그 색종이는 종이학은 될 수 없어도 시는 될 수 있다. 마음껏 못날 수 있다는 것. 그건 오직 시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내가 시를 사랑하는 이유다.

※ 6월 일사일언은 이수빈씨를 포함해 유미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저자, 박한슬 약사·‘숫자 한국’ 저자, 에노모토 야스타카 ‘나만의 일본 미식 여행 일본어’ 저자,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창과 교수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