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운문사에는 귀여운 동자가 있다. 비로전 내의 천장에 달린 작은 동자상으로, 줄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고 해서 ‘악착동자’라고 부른다. 악착동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살면서 덕을 많이 쌓았던 한 보살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느라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에 오르지 못했는데 한참 뒤에 사공인 관세음보살이 이를 발견하곤 밧줄을 던져줬고, 죽을힘을 다해 줄에 매달려 결국 극락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다.
악착(齷齪)이란 말의 한자를 풀어보면 이가 꽉 맞물린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국어사전의 뜻을 보더라도 ‘일을 해내 가는 태도가 매우 모질고 끈덕짐’ 이라고 돼 있다. 우리말 ‘억척’과 뜻이나 어감이 비슷한데 어쩐지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한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 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 시절 ‘악착같은 노력’은 미덕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노력도 재능’이라거나 ‘노오력의 배신’이라는 둥 노력의 효용과 가치에 회의적인 태도들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과연 재능은 유전일까, 노력일까. 모차르트도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만 2살부터 일주일에 35시간씩 교육을 받아 8살이 되던 해에 신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도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유전과 노력, 두 가지 모두 작용하는 것이리라. 다만 ‘재능’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단순히 공부나 운동, 혹은 예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여유, 주변을 돌아보는 이타심도 재능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이건 터무니없이 낭만만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SNS와 같은 매체들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성공을 이루는 시대가 됐으니, 재능의 개념도 그만큼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노력하는 것.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긴 만큼 타고난 재능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귀여운 ‘악착동자’들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