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지 않게 나물 반찬을 좋아한다. 애늙은이 같다는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그러는지 어쩔 수가 없다. 봄이면 두릅 새순을 데쳐 먹고, 늦가을에는 잘 마른 시래기를 먹었다. 소위 ‘저속 노화’ 식단이 유행하기 전부터 당신께선 손자를 저속 노화 식단으로 기르셨다. 기름진 술안주와 폭음으로 노화를 앞당긴 건 오롯이 내 탓이다.

아쉽게도 요즘은 백반집에서도 밑반찬으로 나물이 나오는 걸 보기가 어려워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물 반찬이 동네 식당에서도 풍성하게 나오던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 산나물은 대부분 산에서 채취한다. 산나물을 산에서 캐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과거 산에서 채취하던 버섯류가 재배로 돌아선 지 50년이 넘었다. 산에서 따던 복분자나 밤도 농장에서 수확하고, 나물 반찬이자 약재인 도라지도 상업적 재배가 훨씬 많다. 보름간 금욕하며 목욕 재계를 마친 심마니나 겨우 캐던 산삼도 이젠 밭에서 재배되는 인삼으로 일정 부분 대체가 됐다. 그렇지만 산나물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캔다. 수렵·채취 시절 인류와 생산성이 같다.

산나물을 반찬으로 가공하는 것도 문제다. 오후 한나절을 나물 다듬으며 드라마를 보시던 할머니야 노동 생산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셨겠으나, 요즘 식당 종업원은 철저한 시급제다. 오후 몇 시간 영업을 쉬는 ‘브레이크 타임’까지 도입할 정도로 노무 관리가 강퍅해진 상황에서 손님 없을 때는 나물이나 다듬으라는 소리는 악덕 시어머니도 못 꺼낼 말이 됐다. 그러니 식당 밑반찬에서 나물이 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교적 간편한 콩나물무침이라도 감사한 이유다.

거기에 재난 여파도 있다. 2019년 강원도를 할퀸 화재 이후 산나물 채취량은 9000톤 정도 줄어, 5년이 흐른 지금도 회복되지 못했다. 올해 경북 산불도 비슷한 효과를 낼 테니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 주민에게도 부쩍 어려운 시기일 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표현이 ‘이밥에 고깃국’같이 이상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어 굳어지지는 않을까? 화재 피해 지역이 빨리 회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