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문제를 둘러싼 국정원 내홍이 지난 6월에 이어 반년도 안 돼 다시 불거졌다. 권춘택 국가정보원 1차장이 최근 직무 감찰을 받은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권 차장의 직무와 관련된 의혹이 원인이 됐고, 국정원 내부 인사 잡음이 최근 일부 보도로 다시 불거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번 감찰은 대통령실에 관련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김규현 원장이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1차장에 대한 감찰은 이례적인 일이다. 권 차장의 직무 관련된 의혹은 해외 업무 수행 과정에서 기업체와의 관련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감찰 사태는 지난 6월부터 계속된 국정원 내 인사 갈등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국정원 내 인사 갈등은 지난 6월 있었던 국정원 부서장 인사에서 김 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A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김 원장이 올린 인사안을 반려했고,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A씨 등 일부 1급 간부가 면직됐다. 윤 대통령은 당시 김 원장으로부터 조직 개선 방안을 보고받고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하라”고 당부한 내용도 공개했다. 김 원장을 재신임하면서도 갈등이 재연하지 않도록 조직을 정비하라는 경고 성격도 있었다.
일단락된 듯 보였던 국정원 내 인사 갈등은 최근 한 매체가 A씨가 국정원을 떠난 뒤로도 김 원장을 통해 인사 개입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다시 불거졌다. 일부 매체는 이 일로 김 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고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상황에서 김 원장이 권 차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사실이 다시 알려진 것이다.
김 원장 측에선 권 차장 쪽 인사들이 김 원장 인사에 불만을 품고 ‘원장 흔들기’ 차원에서 내부 인사 문제를 언론에 알려 잡음을 키우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는 얘기다. 직무 관련 의혹으로 감찰을 받는데, 이를 인사 문제로 몰아가 김 원장을 흔들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편에선 “김 원장이 특정 인사들에게 에워싸여 무리한 인사를 하면서 국정원 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김 원장 측에선 전 정권 시절 국정원 정체성과 맞지 않는 업무에 종사했거나 외부 인사 청탁을 통해 요직에 기용됐던 직원들이 김 원장 인사에 불만을 품고 조직적으로 반발한다고 보지만, 반대편에선 김 원장이 옥석 구분 없이 무리한 ‘청산 인사’를 밀어붙이면서 반발을 자초했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진상과 무관하게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 내부 인사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고 갈등이 반년 가까이 계속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지금 국정원 상황은 엄격한 내부 통제 기제가 무너진 느낌”이라고 했다.
국정원 인사 잡음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3월 대통령직인수위 구성 때부터 감지됐다. 당시 인수위에 파견됐던 일부 국정원 직원이 지난 정부 때 주요 역할을 한 인물이란 의견이 제기되면서 ‘원대 복귀’했다. 이어 김 원장 지명 직후 임명된 비서실장 C씨가 반나절 만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인사가 나면서 김 원장과 권 차장 간 갈등설이 불거졌다. C씨 대신 김 원장 비서실장을 맡은 이가 지난 6월 인사 파동 때 면직된 A씨다. 여권 관계자는 “C씨는 과거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권 차장과 근무연이 있었다는 점 등이 고려돼 김 원장이 A씨로 교체한 것으로 안다”며 “이때부터 양측 간 파워게임설이 파다했다”고 했다.
국정원 안팎에선 대통령이 지난 6월 프랑스 방문 직전 직접 나서 사태 수습 지시를 내린 이후에도 내부 분란이 봉합되지 않고 재연한 것은 국정원 조직 기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인사 잡음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앞두고 불거졌다. 여권 관계자는 “인사 잡음의 진상과 함께 내부 잡음이 외부로 알려진 진원 등에 대한 엄정한 감찰을 통해 조직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